(낙태죄 폐지 그리고 7년)④"낙태죄 사라졌는데 살인죄 처벌…입법공백으로 여성만 피해"
6일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 인터뷰 진행
"여성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임신중지가 왜 후기까지 지연되나' 봐야"
"국내엔 공식정보·가이드라인 없어…개인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구조"
2026-02-26 06:00:00 2026-02-26 06:00:00
* 용어 설명: '낙태'는 인공적인 방법을 동원해 태아를 자궁으로부터 분리·사산시키는 행동을 뜻합니다. 해당 행위를 처벌하는 '낙태죄'는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고, 2021년 1월1일부터 효력이 상실됐습니다. 대신 의료적 시술을 통해 태아를 사산시키는 것엔 '임신중절'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의료적 시술을 받더라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국가의 보장 의무를 포함한 권리·정책적 개념을 강조할 땐 '임신중지'라는 말을 권장합니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이번 기획기사에서 형법상 죄명을 지칭할 땐 낙태죄를, 시술을 의미할 경우엔 임신중절을, 권리를 강조하려는 맥락에선 임신중지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정주현 수습기자] "(낙태죄) 비범죄화 이후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을 위한 의료·상담 체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공식 정보도, 미프지미소(미프진)도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을 향한 처벌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국회와 정부가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는 법·제도를 진작 마련했더라면, 원치 않는 임신에서 비롯된 신생아 사망 사건 역시 줄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뉴스토마토>가 형법상 낙태죄의 효력이 상실된 2021년 1월1일부터 올해 1월30일까지 발생한 신생아 살해 사건 가운데 판결이 선고된 사건 총 20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피고인(21명) 가운데 여성은 19명이었습니다. 또 그들 중 11명은 임신중지를 시도했거나 최소한 고려했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형법상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이를 대체할 입법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임신중지에 실패한 여성들은 또 다른 이름의 낙태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있는 겁니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의 셰어 사무실에서 만난 나영 대표는 "문제의 핵심은 처벌이 아니라, 왜 임신중지가 임신 후기까지 지연되는지 그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은 나영 대표와의 일문일답.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7년째 입법공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낙태죄 폐지의 의미는 단순히 임신중지를 더 이상 처벌하지 않는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이뤄져 온 임신중절을 공적 영역으로 편입해, 의료·보건 체계 안에서 안전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제도와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이러한 책무를 다하지 않았고, 입법공백은 무려 7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임신중지는 형사·사법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권의 측면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그런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채 제도적 공백만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처벌로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 (사진=본인 제공)
 
낙태죄 비범죄화 이후에도 임신중지에 실패한 여성들이 살인죄·아동학대살해죄 등으로 처벌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출산 직후 신생아를 유기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낙태죄가 비범죄화된 이후라면 이런 일은 줄어들었어야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임신중지 접근권이 여전히 낮기 때문입니다. 최근 의정부 사건(2025년 12월 경기도 의정부의 한 모텔에서 신생아가 사망한 사건. 당시 생모는 20대 여성으로, 아동학대살해 혐의로 구속기소됨.) 역시 여성은 중절수술을 받으려 했지만, 임신 후기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거절당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이는 단순히 '제도가 없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이 임신중지를 지연시키는지, 그리고 그 지연을 막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열악한 여성이 임신 12주차에 임신중절 수술을 받으려면 병원에 120만~150만원의 돈을 내야 합니다. 미성년자나 사회 초년생일수록 그런 돈이 없으니 아르바이트를 찾고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임신 주수는 6~8주가 지나고, 순식간에 20주차를 넘깁니다. 문제는 그때부터는 수술비가 확 오른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가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채, 단지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가'라는 질문만 반복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국제 기준에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2022년 WHO는 '임신중지 가이드라인'을 통해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를 권고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범죄화는 단순히 여성과 의료인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임신중지와 관련해 형법 조항 자체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살인죄 적용도 금지해야 합니다. 처벌 중심의 접근이 오히려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안전한 의료체계 구축을 가로막는다고 본 겁니다.
 
뉴질랜드 정부가 운영하는 임신중지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DECIDE(decide.org.nz) 홈페이지 화면. (사진=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현재 국내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구체적인 임상 가이드와 상담 가이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뉴질랜드는 낙태죄 비범죄화 이후 1년 안에 이런 가이드를 만들고 배포했습니다. 임상 가이드에는 임신 초기, 중기, 후기에 따라 어떤 의료 행위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초기 몇 주까지는 약을 복용하고, 그 이후에는 시술을 하는 등 이런 가이드가 명확해야지 의료인들도 자신의 책임을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상담기관의 경우에는 상담인의 거주지나 직장에서 가까운 임신중지가 가능한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상담인에게 임신중지에 대한 결정을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이 없으니 개인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겁니다.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 현장의 준비 역시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의료인에 대한 교육 역시 필요합니다. 임신중지가 범죄였던 시기, 의료인들은 사산 방법에 대해서 제대로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는 소파술 혹은 진공흡입술로 중절 수술을 하는데, 이는 수술을 받는 여성의 몸에도 부담을 많이 줍니다. 하지만 해외에선 주사기처럼 생긴 수동 흡입기 등 더 안전한 방식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임상체계 가이드와 함께 의료인 교육 역시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정주현 수습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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