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생성형 AI 시대의 IR : '대체'가 아닌 '진화'
2026-03-24 06:00:00 2026-03-24 06:00:00
생성형 AI가 자본시장의 풍경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챗GPT가 세상에 등장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기업의 투자자 관계(IR) 업무 현장에서도 AI는 이미 일상적인 도구가 되었다. 실적 발표 스크립트를 다듬고, 애널리스트의 질문을 예측하며, 챗봇을 통해 투자자 문의에 실시간으로 응대하는 일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이런 흐름 속에서 IR 전문가의 미래를 둘러싼 두 가지 시나리오가 충돌한다. 하나는 AI가 IR 인력을 ‘대체’하여 전문가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전망이고, 다른 하나는 AI가 전문가의 역량을 ‘진화’시켜 그 가치가 오히려 높아진다는 전망이다. 칭화대학교와 텍사스대학교 연구진이 최근 발표한 논문 ‘IR과 GenAI가 만날 때(When IR Meets GenAI)’는 실증 데이터를 통해 후자의 손을 들어준다. AI는 IR 전문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량을 증폭시키는 강력한 보완재로 작용하고 있으며, 그 효과는 AI를 전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인재를 갖춘 IR 팀을 보유한 기업, 그리고 개인투자자와의 소통이 절실한 기업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 연구는 챗GPT 출시를 기준으로, IR 전담 부서를 보유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정보 환경 변화를 비교 분석했다. 두 그룹 모두 정보 환경이 개선되었으나, IR 부서를 갖춘 기업의 개선 폭이 압도적으로 컸다. 시장에서 기업의 정보가 얼마나 투명하게 전달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들에서, IR 전문가가 AI를 활용한 기업의 주식은 시장에서 더 원활하게 거래되고 가격 변동도 안정되었다. AI는 모두의 수준을 평준화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높은 전문성을 갖춘 조직의 역량을 배가시키는 '숙련 편향적 기술'로 작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을 갖춘 IR 팀이 AI의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은 IR 담당자의 'AI 친숙도'에 관한 분석이다. IT, 통계학, 엔지니어링 등 AI 관련 전공 배경을 가진 인력이 IR 팀에 있는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정보 환경 개선 효과가 거의 두 배에 달했다. 컨퍼런스 콜 분석에서도, 발표 스크립트 작성에 AI를 단순 활용한 기업에서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던 반면, 애널리스트의 예상 질문을 분석하고 답변 전략을 수립하는 Q&A 세션 준비에 AI를 적극 활용한 기업에서는 유의미한 개선이 나타났다. AI가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에서 전문가의 보조 도구로 쓰일 때 가장 큰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뜻이다. 한국 상장사 중 상당수는 IR 업무를 재무팀이나 경영기획팀에서 겸직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데, AI 시대에는 IR 팀 구성 시 AI 활용 역량을 핵심 요건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AI가 정보 환경을 개선한 경로도 흥미롭다. 전통적 공시 채널에서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지만, 기업 웹사이트 등 비전통적 소통 채널을 통한 정보 제공량은 크게 늘었고, 실적 발표 후 주가에 정보가 반영되는 속도도 빨라졌다. 특히 이런 변화의 수혜자는 기관투자자가 아니라 개인투자자였다. 기관투자자 비중이 ‘낮은’ 기업, 즉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높은 기업에서 AI 도입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 것이다. AI가 챗봇이나 웹사이트를 통해, 종래 IR 팀이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개인투자자와의 접점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의미다.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거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AI를 활용해 개인투자자와의 소통을 적극 확장하는 기업이야말로 정보 비대칭성을 줄이고 공정한 가치 평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술의 발전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AI 도입 이후 IR 기업들은 ‘좋은 뉴스’의 공시만을 효과적으로 늘렸을 뿐, ‘나쁜 뉴스’의 공시에는 변화가 없었다. AI가 작업 효율을 높여주지만 경영진의 정보 공개 인센티브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AI가 만들어내는 효율성의 이면에서 전략적 정보 은폐가 더 정교해질 수 있다는 점은, 이사회와 규제 당국이 경계해야 할 과제다.
 
결론적으로, 생성형 AI 시대에 IR 전문가의 역할은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이다. 챗GPT 출시 이후 기업들이 IR 인력을 줄였다는 증거는 이 연구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AI가 반복적인 업무를 맡는 대신, 인간 전문가는 시장의 맥락을 읽고 이해관계자와의 신뢰를 구축하는 본연의 가치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AI를 깊이 이해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IR 팀이 주주들과 투명하게 소통하고, 그동안 소외되었던 개인투자자와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넓혀가는 기업이 기업가치를 높이는 선순환을 만들어낼 것이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이를 다루는 사람의 전문성과 판단력이다.
 
윤태준 한국ESG연구소 거버넌스본부 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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