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개인회생 신청이 역대 최다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이 중 보이스피싱 등 사기 피해가 원인이 된 신청이 얼마나 되는지는 법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사기 범죄 수법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피해 규모도 커지는 사이, 피해 회복의 마지막 관문인 법원에서조차 이런 사례가 얼마나 쌓이고 있는지는 통계로 잡히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27일 <뉴스토마토> 취재에 따르면 회생법원에서는 개인회생 신청 사유를 유형별로 따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사기 피해가 원인이 된 회생 신청을) 따로 집계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기 등 사례에 절차상 특별한 배려가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사기 등에만) 특별히 배려해야 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어서 똑같이 진행한다"고 답했습니다.
회생 전문 강지훈 변호사는 그 이유에 대해 "범죄 유형이나 피해 액수가 워낙 세분화돼 있고 개개인별로 달라 법원이 일률적인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며 "회생절차를 빨리 정리해 주는 게 법원의 핵심 목적인데, 사유별로 나누는 것 자체가 그 목적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그가 다룬 회생, 파산 등 여러 사건도 피해액(3000만원대부터 20억원대)과 유형이 다양했습니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박현근 회장은 "회생 신청서에 신청 경위를 적긴 하지만 이게 진술서 형태로 들어오기 때문에, 법원이 그 내용을 일일이 데이터베이스화하지 않는 이상 통계로 잡아내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9월4일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 파산 관련 안내 문구가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법원 개인회생 절차 신청 건수는 집계 이래 역대 최대입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올해 1~6월 개인회생 접수는 8만172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만2192건)보다 13.2% 늘었습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9년 이후 최다치를 기록한 데 이어, 증가세가 상반기 내내 이어진 셈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피싱 범죄의 무게중심 자체가 옮겨 가고 있다는 신호도 뚜렷합니다. 경찰청 집계를 보면 올해 1 ~ 5월 전체 피싱 범죄는 1만689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7% 줄었습니다. 그런데 보이스피싱을 포함한 전형적인 전기통신금융사기는 1만5219건에서 7968건으로 거의 반 토막났지만, 투자리딩방·로맨스스캠·팀미션 같은 이른바 '다중피해사기'는 6081건에서 8924건으로 46.8% 급증했습니다. 정부가 보이스피싱 근절에 화력을 쏟으면서 기존 수법은 눌러 잡았지만, 그 자리를 신종 스캠이 빠르게 채우고 있는 셈입니다.
유형별로는 대량 주문을 미끼로 조달 대금을 가로채는 '노쇼 사기'가 36.2%로 가장 많았고, 투자리딩방(31.1%), 팀미션(21.1%), 로맨스스캠(11.6%) 순이었습니다. 피해 규모로 보면 이미 신종 스캠(4643억원)이 전통적 보이스피싱(2933억원)을 1710억원 앞질렀습니다. 범죄 수법이 옮겨 갈 뿐 피해 총량은 줄지 않으면서, 서민들이 짊어지는 부담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구조입니다.
프리랜서 박하늘씨(가명, 47세)가 당한 사기도 바로 팀미션 사기입니다. 박씨는 지난해 인스타그램에서 본 광고 하나로 삶이 무너졌습니다. 박씨는 아버지 선물을 위해 "○○호텔 리뷰를 써주면 숙박권을 준다"는 문구에 이끌려 메신저로 연락했고, '리뷰를 써주면 리워드(돈)를 준다'는 부수적 제안에 실제로 소액이 입금되며 신뢰가 쌓였습니다. 곧 집단 채팅방에 초대된 그는 "미션을 완료해야 원금과 수익을 찾을 수 있다"는 압박 속에 대출을 받게 되며 계속 돈을 넣었고, 결국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서야 사기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를 기다린 건 더 큰 좌절이었습니다. 개인회생을 밟기로 결심한 박씨가 신용회복위원회와 법률구조공단, 변호사 사무실을 차례로 찾았지만 어디서도 명쾌한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신용회복위원회는 그가 사기 피해를 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다는 이유로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최소 6개월은 지나야 한다는 게 위원회 설명이었습니다. 법률구조공단의 답은 더 복잡했습니다. 박씨는 사기 조직을 상대로 배당금 반환 소송을 진행 중인데, 공단은 이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개인회생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안내했다고 합니다. 혹여라도 소송에서 이겨 나중에 돈을 돌려받게 되면, 그 돈이 이미 확정된 회생 변제 계획에 어떻게 반영되느냐가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소송이 언제 끝날지, 심지어 기각될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박씨가 판결을 서두르려면 사비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데, 비용은 250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 그는 "변호사비를 낼 돈이 있었으면 애초에 회생절차를 밟을 생각도,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 갑갑하다. 형사들도 그렇고, 다들 '나같은 사례는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제로'라고 얘기한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돈 갚으려고 발버둥 치는데, 이렇게 사기를 당하고 난 뒤에 보니, 우리나라 법이 정말 서민을 위한 법이 아니구나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고 토로했습니다.
박씨와 같이 피해자를 구제할 제도적 장치는 아직 마땅치 않습니다. 결국 사기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건 사후 구제 하나만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강지훈 변호사는 "법원에서는 객관적 자료만 확인되면 (보이스피싱 피해자 회생 신청을) 비교적 잘 처리해 주는 편"이라며 "결국 대출 단계에서의 금융 교육이 제일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피해자 상당수가 스스로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길게는 1년 반가량 피해가 이어지다가, 가족이나 직장 동료가 이상 징후를 알아채고서야 뒤늦게 현실을 깨닫는다고도 전했습니다. 범죄 수법이 과거 보이스피싱에서 팀미션·투자리딩방으로 옮겨 가는 지금, 결국 '예방과 구제' 양쪽 모두에서 '제도'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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