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국내 유료방송 시장이 가입자는 남아 있지만 정작 방송을 보는 시청자는 빠져나가는 '유사 코드커팅' 상황에 놓였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유료방송 가입률은 여전히 97%를 웃돌지만 시청 행태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겁니다. 광고·요금 등 규제를 완화해 사업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어떤 규제를 풀 것인가 보다 가입자가 왜 방송을 보지 않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조영신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연구소 C&X 대표는 지난달 29일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대회의실에서 'K-콘텐츠 흥행의 그늘, PP 제작절벽과 생존과제'를 주제로 열린 스터디에서 국내 유료방송 시장을 '유사 코드커팅 시장'으로 규정했습니다. 북미에서는 유료방송 가입 자체를 끊는 코드커팅이 확산됐지만 한국에서는 가입을 유지한 채 실제 시청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조영신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연구소 C&X 대표가 지난 29일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대회의실에서 'K-콘텐츠 흥행의 그늘, PP 제작절벽과 생존과제'를 주제로 열린 스터디에서 국내 유료방송 시장을 '유사 코드커팅 시장'으로 진단하며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실제 국내 유료방송 가입률은 97.5%에 달합니다. 인터넷(IP)TV·케이블TV·위성방송 가입자는 3615만 수준입니다. 반면 TV 수상기를 통한 OTT 이용률은 2023년 23.8%에서 36.4%로 12.6%포인트 높아졌습니다. 조영신 대표는 "코드는 끊지 않았지만 TV를 보는 시청 행위 자체는 코드커팅이 일어난 것과 동일하다"고 진단했습니다.
방송에서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문 콘텐츠가 넷플릭스에서는 상위권에 오르는 현상 역시 콘텐츠 경쟁력보다는 유료방송의 서비스 경쟁력 저하를 보여주는 사례로 봤습니다. 같은 콘텐츠를 이용하더라도 OTT에서는 방송 도중 처음부터 다시 보거나 여러 기기로 이용할 수 있는 반면 유료방송의 주문형비디오(VOD)와 이용 편의성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설명입니다.
문제는 유료방송이 서비스를 둘러싼 경쟁에서도 OTT와 같은 조건에서 뛰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케이블TV와 IPTV 등 유료방송은 방송법과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 등에 따라 요금·상품을 비롯해 편성·광고 등에서 규제를 받습니다. 반면 OTT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요금제와 상품을 구성하고 콘텐츠와 광고 전략을 짤 수 있습니다. 시청자를 놓고는 OTT와 직접 경쟁하지만 서비스를 설계하고 바꿀 수 있는 폭에는 차이가 있어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OTT와 경쟁하기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다만 조 대표는 이 같은 규제 비대칭을 유료방송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유료방송의 요금 규제가 자생력을 저해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요금 규제를 풀어 가격을 올리는 것보다 OTT에 비해 뒤처진 가격과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설명입니다. 광고 규제에 대해서도 "광고는 시청의 그림자"라며 시청자가 떠난 상황에서 규제를 완화하는 것만으로 광고시장이 근본적으로 회복되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이에 규제 완화를 통해 유료방송이 변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 조 대표의 설명입니다. 그는 "정부 규제는 시간을 벌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한다"며 "규제 완화로 확보한 시간 동안 플랫폼과 채널 사업자가 서비스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퀵 VOD와 실시간 방송의 타임시프트, 멀티디바이스 이용, VOD 가격과 이용 편의성 개선 등을 구체적인 과제로 꼽았습니다.
조 대표는 "가입자가 왜 보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며 "시청자가 오게 하기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플랫폼 사업자와 채널 사업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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