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똑같이 임신을 숨긴 채 화장실에서 홀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한쪽은 신생아가 살아서 태어났음이 입증돼 최저형이 징역 7년에 달하는 아동학대살해죄로 기소되고, 다른 한쪽은 출산 전후 신생아가 숨졌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어 살인죄 등으로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살아서 태어났는지(생존 출생)를 과학적으로 밝혀내느냐에 따라 한 산모의 법적 처분이 갈리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사회적 단절 후 '위기 출산'에 이르는 과정은 놀라울 만큼 닮았습니다.
정규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법의검사과 연구원은 출산 직후 신생아 사망 사건에는 살해 의도를 선명하게 가르기 어려운 광범위한 회색지대가 존재한다고 지적합니다. 정 연구원은 “화장실 등에서 홀로 출산한 뒤 공황과 탈진에 빠진 여성의 행위를 어디까지 고의로 판단할 수 있는지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정규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법의검사과 연구원. (사진=정규희)
사산과 신생아 사망, 위험 경로는 같았다
정 연구원은 2015년 이후 국과수에서 부검한 아동 사망 사례를 법의관들과 함께 분석해 온 연구자입니다. 그는 동료 연구진(김희송·최인석·양경무)과 함께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국과수에서 부검한 임신 24주 이상 태아와 생후 24시간 미만 신생아의 변사 사례 110건을 전수 분석해, 지난해 <형사정책연구>에 논문 ‘의심스러운 주산기 사망의 탐색적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전체 110건 가운데 의심스러운 정황 없이 의학적으로 설명되는 사망 39건을 제외한 71건은 임신 은폐와 무의료 분만 등 위기 정황이 나타난 ‘의심스러운 주산기 사망’으로 분류됐습니다. 이 가운데 생존 출생이 입증되지 않은 사산·불명 사례는 38건(53.5%), 살아서 태어난 사실이 확인된 신생아 사망 사례는 33건이었습니다.
생존 출생이 입증되느냐에 따라 법적 처분은 크게 달라지지만,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엇비슷합니다. 친부와의 관계가 단절된 비율은 신생아 사망 집단에서 90.9%, 사산·불명 집단에서 71.1%였고, 의료 이용을 회피한 정황도 각각 90.9%, 76.3%로 나타났습니다. 임신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경우는 두 집단 모두 절반 가까이(48.5%, 44.7%)였으며, 주거 공간에서 출산한 비율도 70% 안팎(66.7%, 73.7%)이었습니다.
정 연구원은 “사례 기록을 보면 성장 과정에서 불안정한 가족관계나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한 정황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다”며 “여기에 친부와의 관계 단절과 사회적 고립이 겹치면서, 주변 사람이나 제도가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하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관찰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핵심은 관계적 고립 속의 위기 임신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출산 직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정 연구원은 신생아 사망 사건의 상당수가 물리력을 행사한 적극적 살해보다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방치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기록상으로는 아이를 해치려고 미리 준비한 정황보다, 혼자 출산한 뒤 공포와 혼란 속에서 아무 조치도 하지 못한 정황이 더 두드러졌다”고 말했습니다.
의심스러운 주산기 사망 경로. (그림=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임신 인지부터 이어진 실패 과정 살펴야”
재판에서는 산전 진료를 받지 않거나 병원 밖에서 출산한 정황이 범행의 고의성을 판단하는 자료로 활용됩니다. 그러나 정 연구원은 신생아 사망을 출산 당일 벌어진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임신 인지 이후 수개월간 이어진 ‘일련의 실패 과정’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신을 인지한 순간부터 ‘가족에게 말할까’, ‘병원에 갈까’, ‘중절 수술을 할까’ 수많은 갈림길이 존재한다. 이들이 왜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는지를 파고들어야 예방책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에서 위기임신 여성이 마주하는 선택지는 좁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려 해도 임신의 중단부터 출산과 양육에 이르기까지 공공이 보장하는 안전망에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이 지나서야 정부는 임신 9주 이하에 사용할 수 있는 먹는 임신중지 약물 미프진을 내년 1분기에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임신중기와 임신후기에 대한 의료서비스는 제도로 공식화되지 않았습니다.
2024년 7월에는 보호출산제가 시행됐지만, 의료·상담 기관에 접근하지 못하는 임신부에게까지 지원이 닿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의심스러운 주산기 사망 71건 가운데 의료기관에서 출산한 사례는 5건뿐이었고, 69.0%는 산전 관리를 받은 기록이 없었습니다.
정 연구원은 “출산을 하겠다는 것과 그 이후 아이를 직접 양육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라며 “출산 당일의 위기를 넘겼다고 위험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양육하기 어려운 상황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생후 초기의 방임이나 영아 사망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임신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안전한 임신중지 의료가, 출산은 하지만 직접 양육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보호 출산이나 돌봄·복지 지원이 실제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장관이 지난달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인공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처벌과 별개로 사망 과정 복기해야”
정 연구원은 재발 방지를 위해 신생아 살해로 확인된 사례뿐 아니라 사산·불명을 포함한 주산기 사망 전체를 아동사망검토(CDR) 제도 차원에서 살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지난 8월4일 개정 아동학대 의심 사망사건을 심층분석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대상은 재판이 확정되거나 사건이 종결된 ‘아동학대 의심 사망’이고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아직 마련 중입니다. 생존 출생이 입증되지 않은 사산·불명 사례는 ‘아동’의 사망으로 잡히지 않아 이런 검토에서 빠질 수 있다는 겁니다.
아동사망검토 제도는 의료진과 법의관, 심리·복지 전문가 등이 함께 사망 과정을 복기해 어느 시점에 어떤 제도가 개입했다면 죽음을 막을 수 있었는지 검토하는 제도입니다. 정 연구원은 “사산·불명으로 처리돼 통계에서 빠지는 사례도 부검 기록에는 남아 있다. 이런 기록이 검토에 함께 들어가야 같은 경로를 밟는 다음 사례를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신생아 변사 사건은 빈곤과 고립, 의료 접근의 어려움, 사회안전망의 부재가 집약돼 드러난 결과”라며 “처벌은 개별 사건의 책임을 묻는 일이고, 다음 사건을 막으려면 그와 별개로 임신 인지부터 출산까지 어디에서 도움이 끊겼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