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약탈적 패권 시대, 약소 동맹국의 생존 전략
2026-10-16 06:00:00 ㅣ 2026-10-16 06:00:00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초, 이란 관련 지원 요청을 한국이 거절하자 “기억해 두겠다”고 말했다. 동맹을 대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이란 외무장관은 한국의 파병을 직접적 침략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원유 수입 안정적 확보와 한미 동맹 사이에서 한국은 ‘약소 동맹국’의 전형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런 딜레마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관세전쟁을 벌이는 캐나다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동맹을 관세로 압박하고, 공개적으로 파병을 종용하는 미국의 패권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스티븐 월트(Stephen Walt) 하버드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2026년 3·4월호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 전략을 “약탈적 패권주의(predatory hegemon)”로 규정했다. 그는 미국의 대외 전략 변화를 3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는 ‘자애로운 패권국’으로 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 봉쇄를 위해 동맹국의 경제 부흥과 상호 번영을 이끌었다. 2단계는 ‘독선적 패권국’으로 소련 붕괴 후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중국의 부상을 방치했다. 그러나 이 시기 오만과 악의적 공격의 대상은 적대국이었다. 3단계가 ‘약탈적 패권국’인데 미국은 미중 패권 경쟁이 깊어지면서 국제관계를 제로섬으로 바라보고 적과 동맹을 구분하지 않은 채 동맹국의 이익까지 희생시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월트 교수는 약탈적 패권이 자기 파멸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 지적한다. 동맹국이 자신의 이익이 약탈당하는 것을 오랫동안 방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제로섬 게임에서는 동맹의 협조가 아닌 보복이나 배신을 부른다. 이런 상황은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과 닮아 있다. 기원전 415년, 전쟁이 장기화된 상황에서 아테네는 시칠리아의 작은 동맹국 세게스타의 요청으로 대규모 원정을 결정했다. 그러나 아테네는 충분한 준비와 정교한 통치 계획 없이 대규모 원정을 추진했다. 니키아스 장군은 지리적 위험성과 현지 세력의 결속력을 경고했지만, 그의 신중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아테네군은 참패했고 아테네의 패권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미국의 대이란 군사행동 역시 동맹인 이스라엘의 부추김, 지나친 낙관론, 치밀한 작전 부재라는 점에서 시칠리아 원정의 비극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는 약소 동맹국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코린토스의 위협을 받은 케르퀴라는 아테네에 공격과 수비를 모두 함께하는 포괄적 동맹이 아니라,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제한적 동맹을 요청했다. 아테네는 이를 받아들였다. 반면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서 중립을 요청했던 멜로스는 아테네에 의해 정복당했다. 두 국가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핵심은 대체 불가능한 전략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느냐에 있다. 케르퀴라는 아테네와 코린토스에 이어 그리스에서 손꼽히는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로 가는 항로의 요충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억해 두겠다”는 말은 협박인 동시에 협상의 초대장이다. 미국의 파병 요청에 대응하는 한국의 선택은 무조건적 순응도, 성급한 동맹 이탈도 아니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3의 길이다. 한국은 호르무즈 파병 여부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 스스로 결정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동시에 에너지 안보와 상선 보호를 위해 외교적·해상 안보적 대안을 적극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케르퀴라가 보여준 전략적 계산과 한국의 자기결정권을 동시에 지키는 방법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니키아스의 신중론과 케르퀴라의 전략적 계산을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해 미국에 역제안할 수 있느냐에 있다. 한국은 우선 이란과 직접적 적대 관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활용해야 한다. 또한 한반도 자체의 방위 부담과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이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도 협상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미국이 추구하는 하드파워 일변도의 동맹 관리 방식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도 냉정하게 고려해야 한다. 패권국의 동맹 전략이 힘의 논리에 기반한다면, 약소 동맹국의 생존 전략도 역시 감정이 아니라 그만큼 냉정한 계산에 기반해야 한다. 
 
김근배 숭실대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