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IB 수혜 기대했던 건설업계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중국 정부 막대한 투자금 앞세워 주요 사업 독식…'우려가 현실로'
사드 후폭풍으로 인한 한-중 외교 마찰도 악재로 작용
2016-08-17 15:16:27 2016-08-17 15:16:27
[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한 건설업계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당초 업계는 저유가로 인한 중동 산유국들의 발주 공백을 AIIB 프로젝트로 메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AIIB 조직 구성이 지연되면서 투자 사업이 늦어지고 있는 데다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국내 건설사들이 실질적인 수혜를 얻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는 아시아 지역 개발도상국의 교통·통신·건설 등 인프라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아시아 개도국에서 필요한 인프라 투자금액은 2010~20년 동안 8조200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연평균 7300억달러 규모다.
 
1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AIIB은 지난 6월 중국 베이징에서 이사회 및 제1차 연차총회를 열고 처음으로 대출 프로젝트 4건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방글라데시 전력시설 확장(1억6500만달러), 인도네시아 슬럼가 정비(2억1650만달러), 파키스탄 고속도로 건설(1억달러), 타지키스탄 국경도로 개선(2750만달러) 등 전체 투자자금 5억900만달러 규모의 사업이 결정됐다.
 
이중 파키스탄 M4 고속도로 쇼콧∼칸월 구간 건설 프로젝트는 최근 착공했다. 파키스탄 서부 펀자브주 쇼콧에서 칸월에 이르는 64㎞ 구간의 도로를 건설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중국 건설업체가 수주했으며 총 2억달러가 투입된다. 이중 AIIB는 절반가량의 지분을 갖고 참여한다.
 
업계에서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반응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AIIB에 가장 많은 지분을 투자한 중국이 주요 사업을 독식할 것이란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었다. 중국이 자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연계해 AIIB 사업을 수주하고 이를 중국 건설업체들이 시공할 것이란 전망이었다. 특히 중국 정부의 해외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이번 파키스탄 도로공사도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연계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파키스탄은 현재 중국의 지원을 받아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460억달러(55조7000억원) 규모의 철도, 도로, 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이번 파키스탄 사례 외에도 AIIB 사업이 진행되는 대부분의 국가가 중국의 해외 투자 정책과 깊숙이 관여돼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며 "주요 사업의 경우 중국 외 다른 나라가 수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있다. 우리나라는 AIIB에 다섯 번째로 많은 지분을 투자했지만 돈만 쓰고 실속은 없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파키스탄 도로공사 외에 올해 예정된 나머지 프로젝트가 모두 중국 주도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AIIB 내부의 조직 구성이 늦어지고 있는 점도 국내 건설업계로서는 악재다.
 
AIIB는 올 1월 정식 출범했지만 아직까지 조직을 꾸리지 못했다. 지난달 말 회계지원관, 자금지원관, 선임 신용위험 전문가, 민간사업 전문가, 사업지원 전문가, 경영진 지원, 준법감시 자문관 등 총 12명을 뽑는다는 공고를 내고 공모절차를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홍기택 AIIB 부총재의 휴직신청도 영향을 미쳤다. AIIB는 홍 전 회장이 맡았던 리스크관리담당(CRO)을 국장급으로 강등시켜 후임자 공모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내 건설사의 수주 지원을 위한 정부의 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 코트라는 올 여름 개최를 목표로 AIIB 인사들을 초청해 추진 프로젝트를 기업들에 설명하는 AIIB 프로젝트 플라자 행사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조직구성이 미뤄지면서 연내 유치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와 함께 우리 정부의 사드 배치에 따른 후폭풍도 건설업계의 불안감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중국이 AIIB를 주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드 배치로 인해 감정이 상한 중국 정부가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한국 건설사가 수주하도록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국책금융기관들 사이에서도 AIIB가 한국 보다는 중국이나 일본계 자본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AIIB 프로젝트에 대한 중국 기업의 독식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국내 건설업계의 실망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GS건설이 2008년 11월 준공한 22억달러 규모의 이란 사우스파 정유공장 전경. 사진/GS건설

 
최승근 기자 painap@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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