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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충언할 때 한국민주주의 바로선다
2017-11-14 06:00:00 2017-11-14 06:00:00
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한국정치가 이 정도까지 부패했었나’라는 생각과 함께 자괴감이 든다.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명명해야 할 만큼 망가졌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 정부들의 파행적인 국정운영을 보며 문득 우리 교육의 실패를 떠올린다.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교육열과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하는 한국 아니던가. 그런데 우리는 과연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이 정부를 이끌었다면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이·박 전 대통령들의 비민주적 행태뿐만 아니라 이들 정부에서 녹을 먹었던 고위 공직자도 문제였다. 박근혜정부 경제수석이었던 안종범은 최순실의 실체를 공개하라고 대통령에게 건의했으나 묵살당한 후 끝까지 충언하지 않았다. 민정수석이었던 우병우는 주군에게 그 어떤 직언도 하지 않은 듯하다. 김관진 전 국방장관은 어떠했나. 충언은커녕 이명박 대통령의 공작정치에 일조하지 않았던가. 이들에게 과연 직업 윤리정신은 있었던가. 국가수반이 궤도이탈을 꿈꾸면 목숨 걸고 이를 바로 잡아야 했지만 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인성교육을 받지 못한 채 입시위주의 공부만을 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그간 ‘아닌 것은 아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치지 않았다.
 
흔히 이 세상에 완전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 민주주의를 다시 한 번 끄집어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 엘리제궁에 입성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국민, 아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취임 1개월 만에 첫 번째 국정운영 실수를 저지르며 경험미숙에 권위적인 대통령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면치 못했다. 그 사건은 프랑스 군의 정점에 있는 피에르 드 빌리에(Pierre de Villiers) 참모총장과 내년도 국방예산을 둘러싸고 견해가 엇갈리면서 일어났다. 결국 빌리에 장군은 자신의 견해가 관철되지 않자 사직으로 항변했다.
 
5성장군 제복을 벗은 지 4개월 만에 빌리에 장군은 자기가 왜 사직을 했는지에 대한 일화를 담은 책 ‘봉사하다(Servir)’를 출판했다. 빌리에 장군은 지난 10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위반에 대한 책임을 재검토하고자’ 책을 썼다고 밝혔다.
 
250페이지로 구성된 책에서 빌리에 장군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 날인 7월19일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엘리제궁에서 약속이 있던 날 나는 서류를 들고 있지 않았다. 단지 백지 한 장만을 준비했다. 어떤 참모총장도 제5공화국에서 사임한 예가 없다. 그러나 나는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나는 대통령과 50분간 대화를 나눴고 그의 말투는 누그러졌다.”
 
빌리에 장군은 또한 마크롱 대통령의 형식과 내용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자신이 사임한 두 가지 이유를 밝혔다. 첫째, ‘중재 차원에서 내용’의 문제를 들었다. “내 생각에는 보다 빨리 추가예산을 편성할 노력을 해야 했다. 내게 예고도 없이 2017년 군 예산 중 갑자기 8억5000만 유로(한화 약 1조1088억원)를 취소했다.”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7월14일 혁명기념일 전야에 마크롱 대통령이 국방부의 군인들 앞에서 한 연설이다. 그 연설에 들어있는 대통령의 제안은 국가 원수와 참모총장 간의 절대적 신뢰를 퇴색시키기에 충분했다.”
 
책 내용은 이어진다. “나는 대통령의 견책에 놀라웠다. 그 후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참모총장이 사직한 것은 프랑스 제5공화국 역사상 처음이었고 이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짜 충성은 대통령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진짜 자유는 어떤 위험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이를 행할 수 있어야 한다…진짜 충성은 눈 먼 충성을 질책한다. 이는 호의에서 나온 충성이다.”
 
빌리에 장군은 “국가와 프랑스 군대의 공복이라는 입장에서 커리어를 포기하고 마음속에 간직한 이야기를 하기로 선택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충성은 참모들의 정신도 아니고 잘 보이기 위해 항상 하는 찬동도 아니다. 침묵은 때때로 비굴한 행동에 가깝다”라는 말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과 이 전 대통령의 소환 임박 등 일련의 부끄러운 사건을 바라보며 두 전직 대통령에게 빌리에 장군처럼 누군가 목숨 걸고 충언을 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필시 지금과 같은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빌리에 장군의 말처럼 충성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힘이고 진짜 충성은 눈먼 충성을 질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요원들이라고 해서 다른 교육을 받았을 리 만무하다.
 
과거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현 정부에서 녹을 먹고 있는 공직자들도 대통령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충성은 참모의 정신도 아니고 잘 보이기 위해 하는 찬동도 아니다. 한국 정부가 더 이상 궤도 이탈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의 정상화가 급선무다. 청와대는 이점을 깊이 명심하고 인성교육의 장을 바로 세울 수 있길 바란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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