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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헬무트 콜에게 배워야 할 주변국 외교
2018-03-05 06:00:00 2018-03-05 06:00:00
최한영 정경부 기자
1990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초대 독일총리 역임)의 역할은 컸다. 당시 동·서독 주변국 사이에서는 ‘제1·2차 세계대전 경험에 비춰볼 때 인구 8000만의 통일 독일이 유럽대륙에 위협을 끼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는 “(동·서독을 비롯한) 국경은 이제까지의 상태 그대로여야 한다”며 공개적인 적대감을 드러냈고,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도 “유럽이 1913년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걱정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콜 총리는 주변국 정상과의 숱한 만남을 통해 우려를 불식시켜 나갔다. 미국·영국·프랑스·소련 등 주요국 정상과의 양자회담은 물론 유럽공동체(EC),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다자외교의 장도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유로화 도입·NATO 잔류 등 주변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콜 총리의 노력에 우연한 기회들이 겹쳐 독일 통일은 찾아왔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남북 고위층이 만나는 것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조성은 이뤄지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핵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전망이 없는 남북 교류협력 확대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미국에 대한 실체적 위협이 되었기에 그렇다. 독일 통일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이 피력한 ‘어느 나라든 간에 분단되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기대할 수는 없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조건이 필요하다. 일본과는 위안부 문제 등으로 불신이 깊어지고 있고, 중국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민주정부(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다. 이들 국가와의 대화·설득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우리의 지난날 역사에도 그 예시가 있다. 지난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에 황원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특사로 파견해 회담 결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김 대통령은 이후 우리 측 고위관료들에게 ‘(미국에) 회담 현장의 숨소리까지 사실대로 알려주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는 4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수석특별사절로 하는 특별사절단을 북한에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사절단은 특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 여건 조성과 남북 교류활성화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사절단에 포함된 정 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방북 후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중국·일본과 긴밀한 협의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콜 총리는 통일 후 “서독에 대한 유럽 파트너 국가들과 미국의 신뢰를 확고히 하지 않았다면 1989~1990년과 같은 역사 진전은 불가능했다”고 회고했다. 달리 말하면 국제협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통일논의는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최한영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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