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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밤마실’ 갑시다, 어쨌든 삶은 계속될 테니②
우울하지만 찬란한 서사 조각…나이트오프의 1년 반 ‘음악 외출’
2018-12-22 18:00:00 2018-12-22 1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나이트오프(Nightoff)’. 일을 쉬는 밤이란 뜻이다. 휴식이다. 해방이다. 자유다.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밤마실이라도 나가야 할 것 같은 이 자유의 언어가 밴드명이 됐다. 선택하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능룡)펄펄 끓는 느낌의 ‘보일러’도 생각해봤고, 둘 다 안경을 쓰고 있어 ‘바이시클’이란 명칭도 떠올려 봤었어요. 형은 ‘작은 소형 미니어처’ 이런 것도 생각했고요.”
 
“(이언)여러 가지 떠올리다 ‘라이트라이트’란 이름에 둘 다 좋다고 합의를 봤는데, 검색을 하다보니 북유럽 신스팝 밴드가 있더라고요. 정말 절망을 했었죠.”
 
“그러다 능룡이가 ‘나이트오프’란 표현을 발견했어요. 당번 없이 쉬는 밤이란 뜻인데, 저희의 프로젝트와 잘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니네’와 ‘못’으로 활동하던 둘이 잠시 외출의 시간을 갖는 거니까.”
 
밴드 못의 이이언(왼쪽)과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이능룡. 이 둘은 올해 밴드 '나이트오프'로 활동을 했다. 밴드명은 일을 쉬는 밤이란 뜻. 한국말로 '밤마실'에 가깝다. 사진/PRM
 
편히 쉬어가자 생각했던 ‘음악 외출’은 오히려 삶의 큰 변곡점이 됐다. 이전 작업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들을 하나, 둘 보게 됐다. 익숙했던 나 만의 방식을 탈피하고 다른 생각들을 흡수시켜보는 것. 삶의 유연함을 배워보는 것. ‘나이트오프’를 통해 두 뮤지션이 얻게 된 것들이다.
 
“(이언)다른 부분은 아니어도 음악만큼은 제가 타협을 하지 않는 그런 부분이 있어요. 근데 능룡이와 함께 하면서는 조금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음악적인 ‘유연함’이랄까요.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방식들이 모두 옳거나 한 건 아니구나, 세상에는 다른 좋은 것들도 있는 거구나, 배우게 됐어요. 그런 차이들이 결국 삶을 더 가치 있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능룡)1년 반 정도 지나면서 저도 많이 배웠어요. 소통과 이해 측면에서요. 가장 큰 소득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지난달 30일 낸 EP ‘마지막 밤’은 그런 깨달음의 결과물이다. 1년반 동안 함께 한 ‘음악 여정’이 오롯이 담겼다. ‘마지막 밤’이란 타이틀 역시 ‘이들이 함께 한 (음악) 여정의 마지막 밤’을 축약한 단어다. 
 
“(이언)보통 여행 가서 마지막 밤쯤 느껴지는 묘한 정서가 있잖아요. 내일이면 돌아가네 하는 아쉬움도 들고, 여행 동안 쌓아온 행복감도 있고. 이러 저러한 복잡한 감정들이요. 그래도 어쨌든 그런 밤은 나름 충만한 감정의 밤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타이틀에서 여행이란 글자를 뗀 건, 그게 더 낭만적이기도 하고, 해석의 여지가 풍부해질 수 있단 생각에서였어요.”
 
밴드 '나이트오프'. 사진/PRM
 
다소 우울한 서정을 머금었으나, 각 곡들은 찬란한 서사 조각들이다. 슬픈 세상을 온몸으로 살아내면서도 희망 한 줌 정도 볼 수 있는 우리네 일상을 그린다. 한 시절의 끝을 담담하게 읊조리거나(‘잠’), 미운 세상을 ‘너’와 함께 예쁘게 시들고 싶다고(‘오늘의 날씨는 실패다’) 얘기하는 식이다.
 
“(능룡)‘잠’에서 뭔가 다 내려 놓고 마무리 되는 상황이 있다면, ‘오늘의 날씨는 실패다’처럼 너와 함께 출발의 희망을 느끼게 되는 상황도 있죠. 이번 앨범은 사람이 겪게 되는 감정 곡선대로 흘러가지 않나 생각해요. 희비를 교차하는 감정 흐름이 못이나 언니네와는 차이점일 수도 있고요.”
 
“(이언)우리의 삶은 흔들리고 넘어지고 그렇게 반복되지만 그것으로 꼭 끝난다거나 좌초하지만은 않잖아요. 어쨌든 그런 일들이 있어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라는 게 이번 앨범의 이야기에요.”
 
사운드 측면에서 ‘소리 실험’도 눈에 띈다. 아슬아슬한 반음계를 활용하거나(‘오늘의 날씨는 실패다') 속도감 있게 쌓아가던 소리들을 갑작스레 잡음으로 뒤틀곤(‘우린 매일매일') 했다. 
  
“(이언)’오늘의 날씨는 실패다’ 같은 경우 반음계 때문에 불협화음처럼 들린다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불협은 아니에요. 위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험하지 않은 안전한 롤러코스터 같은 느낌이라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우린 매일매일’의) 뒤틀리는 음은 우리 삶이 그럴 때가 있잖아요. 어떤 날과 어떤 날을 비교하면 정말 다른 경우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드라마틱한 변화가. 앞 쪽의 음이 하나의 세상이라면 그것과는 아예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느낌 같아서 넣었어요.”
 
밴드 '나이트오프', 사진/PRM
 
밴드는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비주얼’에도 큰 비중을 둔다. 6월 싱글부터 유화 느낌의 아트웍으로 밴드 만의 이미지를 정립시키고 있고, 예술 기호들이 부유하는 감각적인 뮤직비디오도 제작했다.
 
“(능룡)음악을 다른 매체와 결합시키는 게 필요한 세상이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영상이나 그림, 스토리. 뭐가 됐든 다른 매체와의 결합을 고민할 것 같아요.”
 
옆에 있던 이언은 잠시 핸드폰을 들더니 더블싱글 ‘테이크 어 나이트 오프’의 아트웍을 보여준다. 유화 물감 덩어리를 바른 붓이 이제 막 캔버스에서 붓질을 뗀 듯한 이미지. 숲 속 공간에서 두 사람이 저 멀리 어둠을 걷어내는 도시의 찬란한 불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언)여행의 마지막 밤이라 해서 마냥 처지지 만은 않는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함께 여행을 하는 중이니 재밌게 놀자, 하는 마음이 더 크죠. 1년 반 동안 저희 프로젝트가 그랬다고 생각해요.”
 
밴드의 음악을 여행지에 빗대달라는 마지막 질문에 둘은 도시 쪽으로 가닥을 모았다.
 
“(능룡)도시 느낌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언)일본 쪽이 좋지 않을까? 후쿠오카? 도쿄 보다는 후쿠오카.”
 
“서울이나 도쿄보다는 그 느낌이 맞는 것 같네요. 조금 더 여유있고 한적하고. 그러면서도 아기자기하면서 재미있고. 약간 더 서정적인 느낌이 있는 도시 같아서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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