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동물원, 파스텔톤 '일상의 시'
한국 포크계 전설…"37년 전 혜화가 우리 음악 정취"
1987년 산울림 김창완 프로듀싱으로 데뷔
뮤지컬 '다시, 동물원'…초기 멤버 박기영 음악 감독
2023-07-13 06:02:03 2023-07-13 10:21:24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혜화역 인근에 파랑새극장이 아직도 있죠. 1988년 3월, 동물원으로 첫 공연을 했던 곳이에요. 그 후로 수많은 소극장 콘서트를 혜화에서 했죠. 우리 음악의 향기를 만든 '고향' 같은 곳이에요."
 
한국 포크계 전설 '동물원'의 초창기 멤버, 박기영(홍익대 공연예술학부 교수)씨가 수채화 같은 미소를 띄며 말했습니다. 최근 서울 혜화역 인근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코튼홀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다시, 동물원'의 음악 감독을 맡은 그가 본보 기자와 만났습니다. 37년 전의 동물원을 오랜 서랍장에서 꺼내듯한 표정으로 "벗님들, 김현식, 해바라기, 이광조 같은 선배들이 서던 무대를 동경하다가, 하얀 교복 차림의 여학생들이 끝없이 밀려 들어오는 광경을 보던 게 꼭 어제 일 같다"며 웃었습니다.
 
1988년 데뷔…산울림 김창완 프로듀싱
 
1988년 데뷔한 동물원은 김광석, 김창기 등의 산파 역할을 해온 한국 대표 포크 그룹입니다. TV로 소비되는 기성 가요와 대학가의 통기타 공연으로만 양분되던 문화적 공백을 이들은 뚫고 나왔습니다. '거리에서', '변해가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혜화동', '널 사랑하겠어'…. 멜로디 한 마디 한 마디, 가사 한 줄 한 줄은 지금 들어도 그 자체로 '일상의 시'입니다.
 
한국 포크계 전설 '동물원'의 초창기 멤버들. 사진=동물원
 
"평범한 사람들의 보잘것없는 일상이 노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평범하다 못해 찌질하기까지 한 우리의 상념들도 시가 될 수 있구나' 하는… (김) 창완(산울림)이 형에게 보낸 데모 테이프가 단초가 됐던 건 돌아봐도 신기해요. 1987년 7월 여름 녹음을 시작했었죠."
 
당시 동물원 초기 멤버들은 김창완이 차린 음반·기획사 '타임레코딩'에 20곡 정도 녹음한 데모 테이프를 보냈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직접 부르기보다는 성량 좋은 가수들을 이 곡으로 데뷔시키라는 취지로. 그런데 며칠 뒤 김창완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이거, 너희들이 직접 해보면 어떻겠니? 난 그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정식 녹음실이 아닌 열악한 환경에서도 투닥거리며 녹음을 시작했습니다. 손으로 패드를 터치하는 드럼 머신과 플라스틱 건반 정도가 덩그러니 있는 조그만 녹음 부스. 김창완이 직접 일렉기타 솔로를 연주하며 함께 녹음을 완성해갔습니다. "창기 형이 곡을 써오면 악보를 보고 같이 연주를 하는 식이었는데요. 제가 피아노 연주를 스케치하듯이 따면 (창완 형은) '됐다 그걸로 가자' 하는 거예요. 그 '독특한 미적 관점'을 당시 저희는 이해를 못했어요. 근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알 것도 같더라고요. 서툰 연주와 사각사각 대는 사운드가 우리의 노랫말이나 풋풋한 멜로디와 결합하는, 그 묘한 화학적 반응을 캐치하셨던 게 아닐까 싶어요. 산울림 초기작들처럼요."
 
최근 서울 혜화역 인근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코튼홀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다시, 동물원'의 음악 감독을 맡은 박기영 주축으로 재편한 한국 포크계 전설 '동물원' 현 3인 멤버들. 사진=동물원
 
파스텔톤 동화 같은 '일상의 시'
 
같은 해 2집까지만 김창완이 프로듀서를 맡고 이후 김광석이 탈퇴(1989)했으나, 3집 수록곡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1990), 6집 수록곡 '널 사랑하겠어'(1995) 대히트로 고유 정체성과 사운드를 계속해서 이어갔습니다. 동물원의 음악은 정박되지 않습니다. 맑은 날 수채화 같은 정경으로 흘러갑니다. 미성의 음성과 말랑하고 섬세한 선율, 시적인 소소한 풍경들이 실내에 깔리면, 그곳이 어디든 이들의 파스텔톤 동화풍 음반 표지처럼 돼 버립니다.
 
동물원 멤버들은 지적인 이미지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연세대 의대 출신의 김창기를 필두로 박기영(연세대 정외과), 박경찬·유준열(고려대) 등이 음악과 생계를 병행했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음악을 취미로 치부하기엔 많은 것을 걸었던 것 같고, 녹음과 공연에 아낌없는 열정을 쏟았거든요. 앞으로 평생 우리 삶에서 가져가야 할 일인가에 대해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런 것 같아요." 
 
뮤지컬 '다시, 동물원'은 동물원의 결성 당시부터의 이야기를 옮긴 작품입니다. 음악감독을 맡은 박기영씨가 이전 시즌과 비교해 하모니카 음색을 부각시키고, 친구들 간 관계성에 초점을 맞춰 편곡을 완성했습니다. "37년이 대단한 시간 같지만 사실 엊그제 일 같아요. 87년 창완이형 조그만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88년 동물원 세 글자 찍힌 음반을 손에 쥐고, 레코드 가게에서 우리 노래 나오는 걸 신기해하던…. 저희의 음악이 과거 유물이나 추억으로 남기보단 현재성을 가능하면 가질 수 있었으면 해요. 앞으로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내보도록 해봐야죠."
 
최근 서울 혜화역 인근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코튼홀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다시, 동물원'의 음악 감독을 맡은 박기영 주축으로 재편한 한국 포크계 전설 '동물원' 현 3인 멤버들. 사진=동물원
 
 에필로그: '회색빛 도시의 서정미', 우리가 모르던 동물원

-37년 전 '동물원'으로 음악을 처음 시작하셨을 때 어떤 마음가짐이셨나요. 음악으로는 미래가 불투명한 청춘 시절을 선생님께서도 보내셨겠죠.
 
저도 대학 4학년생이었고, 멤버들 중 일부는 대학원과 군대 복학 시기였죠. 김광석씨를 빼고는 다 학생이었고, 앞으로 음악을 업으로 삼겠다는 친구는 별로 없었어요. 그렇다고 아마추어냐, 참 모호했던 거 같아요. 단순히 취미라고 치부하기에 우린 많은 것을 걸었던 거 같고, 지금도 그 당시 녹음·공연을 대하는 우리 열정이나 마음가짐 만큼은 진실됐던 것 같아요. 분명하게 단정 지을 수 없는 복잡한 정서들이 혼재돼 있었던 청춘시절이었죠. 음악을 하면서도 이걸 계속 해야하나, 내가 앞으로 평생 내 삶에서 가져가야 할 일인가, 고민했으니까. 이번 공연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멘트들을 줄곧 했던 거 같아요.
 
-1987년에 산울림 김창완 선생님이 본인의 음반 기획사를 만들어서 그 첫 번째로 1988년에 동물원 음반을 제작한 게 시작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당시 창완쌤하고 어떻게 1집 음반을 만들어갔던 기억이 있나요.
 
김창완 형님은 대한민국 음악사에서 가장 독특한 미학의 소유자 중 한 분이 아닌가 싶어요. 저희가 스케치 식으로 연습 녹음을 했는데 들어보시더니 '됐다, 이거다' 하시더군요. 1집 음반이 나오고 나선 한동안 듣기가 싫을 정도였어요. 우리가 이 정도로 연주 못하는 사람들은 아닌데, 싶었거든요. 나이가 좀 들어서야 이제 창완 선배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리듬이 잘 맞고 피치가 잘 맞고 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서툰 표현들이 저희의 노랫말이나 풋풋한 멜로디와 결합되면서 나올 수 있는 묘한 화학적 반응을 캐치했던 게 아닌가. 산울림 초창기 음악 들어보면 기타 튜닝이 묘하게 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1집 '거리에서', '변해가네', '말하지 못한 내사랑' 등이 히트하며 10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렸는데요. 이 곡들을 쓸 때 아직까지 세상에 소개되지 않았거나 재미있는 에피소드 같은 것은 없을지요.
 
'거리에서'의 경우는 나름 저희끼리는 전략적인 선택이었어요. 1집에서 가장 동물원스럽지 않은 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변해가네'는 김창기 형이 썼는데, 이 곡을 노래하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어느날 제가 쇼파에서 누워서 자고 있었는데 제게 한번 불러보라더군요. 되게 굵고 어두운 보이스인데, 그게 꽤 자서 목이 잠긴 상태에서 풀리지도 않은 상태로 엉겹결에 부른 것이었지요. 1집 땐 사운드가 굉장히 드라이해요. 리버브이펙트(소리에 울림을 주는 효과 장치) 보컬에 많이 사용하던 시기인데, 저희 녹음실엔 없어서 그런 효과를 못줬어요. 그래서 얘기하듯 사각사각 들리는 것이지요. 창완이형은 의도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해요.
 
-1988년 동물원 2집 앨범 내 '흐린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혜화동', '별빛 가득한 이 밤에'도 역시 대박이 났습니다. 이 곡을 만들 때는 어떤 기억들이 있습니까.
 
대부분 이미 1집 할 때 작곡된 곡들이었어요. 2집 녹음 전 콘서트에서 계속 연주하던 노래들이었고요. 다만 이때부턴 녹음을 동부이촌동에 있던 80년대 최고의 '서울스튜디오'로 가서 진행했어요. 창완형의 의도대로 '투트랙마스터 녹음방식'이라고 모든 악기들을 동시에 연주해서 녹음하는 방식으로 했어요. 중간에 누가 틀리면 처음부터 다 다시해야 하는 거죠. 창완형은 동물원은 일반적인 녹음 방식으로는 그룹이 지닌 특별한 색깔을 표현할 수 없다고 봤던 거 같아요. 이때부턴 리버브 이펙트를 써서 1집 때 못한 '목욕탕 사운드'의 한을 다 녹여냈어요. 하루 만에 녹음이 끝났었습니다.
 
-김광석은 동물원에게 어떤 존재였나요. 3집에 어쿠스틱 기타로 참여하였고, 4집에서는 코러스, 5-2집에서는 '이젠 떠나가세요'라는 곡을 부름으로써 함께 했었는데요.
 
음악동료 이기 이전에 다 친구들이었죠. 그런데 녹음 과정에 음악적 견해나 곡을 해석하는 차이는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거리에서'를 녹음할 때 창기형과 마찰이 있었던 적이 있어요. 첫 소절의 가창 방식을 끌기보다는 툭 던지는 걸 요구했는데, 광석이형은 일부러 안하는 건지, 안돼서 못하는 건지 특유의 스타일로 계속 불렀거든요. 결국 광석이형 스타일 대로 실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 한소절로도 꽤 많은 이야기와 시간을 소모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1990년 김창기, 박경찬, 박기영, 유준열 4인의 멤버로 동물원 3집을 발표해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를 히트시켰는데요. 이 곡을 쓸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신다면요. 
 
창완이형하고도 결별하게 된 거고, 광석이 형하고도 팀을 달리하게 된 상황에서 우리끼리 잘 해서 살아남아야한다, 절박감이 있었어요. 평범하면서도 예민한 동물원 만의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가장 잘 드러난 음반이 아닌가 싶어요. 가장 독특한 동물원의 시각이 잘 드러난 음반이라 생각해요.
 
-동물원의 대표곡 3곡만 꼽아보신다면 무엇일지.
 
1집에서는 '잊혀지는 것', 가사가 한 편의 시 같은 노래죠. 실제로 국문과 다니던 후배가 과제로 시를 한 편 써서 제출해야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농땡이를 부리다가 이 곡 가사를 그대로 제출했는데 A+를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하하. 2번째 '동물원'이라는 곡은 저희 팀과도 연관이 있는데요. 히트는 못했는데 저희 멤버들은 다 좋아했어요. 음악적 분위기는 우울하고 비장한 면도 있는데 가사는 수채화 같은 가사고요. 3집에서는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를 빼놓을 수 없죠. 한편의 단편드라마인 가사기도 하고요.
 
-동물원의 그간 활동, 그리고 이번 뮤지컬 프로젝트를 공간에 빗댄다면 무엇일 것 같은지.
 
종로 쯤에서부터 혜화에 이르는 구도심이 떠오르네요. 저희가 처음 데뷔했을 때 기사 카피 중 기억 남는 게 '회색빛 도시의 서정을 노래하는 그룹'이라는 게 있었어요. 가만 생각해보니까 역설적으로 회색빛이긴 하지만 도시가 서정적으로 느껴진 시대가 아닌가, 그 정도 여유를 갖기 시작했을 때 듣던 음악이 아닌가 싶었어요. 우리 기억에서 재해석되고 편집된 기억일지라도 도시가 가진 낭만, 서정 이런 것들을 음악속에 담아내기 시작한 그 시작점이 동물원의 음악이 아니었나 싶어요. 저희들의 활동 동물원의 음악들, 공간에 빗댄다면 서울의 구 도심이 아닐까 싶어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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