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도비만' HUG, 고래 싸움에 등 터진다
작년 보증잔액 600조…총예산 맞먹어
순손실 '역대 최대'로 곳간 줄줄 새는 중
분양·전세보증 사고 급증…덩달아 손실↑
"디폴트 사태 놓이면 국가신용 무너져"
2024-05-30 06:00:00 2024-05-30 06:00:00
 
[뉴스토마토 임지윤·신유미 기자]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둘러싼 정부와 야당의 갈등에 '초고도비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터질 지경입니다. 지난해 연말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HUG의 활용 가능 보증한도는 900조원까지 불어났는데,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곳간이 텅 빈 상태입니다.
 
특별법 통과 시행 여부와 상관 없이 HUG 재정 문제는 가만히 놔두면 안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8일 야당 주도로 '선 구제 후 회수' 내용의 특별법까지 통과돼 HUG의 부담은 더욱 커질 위험에 처했습니다. HUG의 관리감독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박상우 장관은 특별법 통과 즉시 HUG가 위탁 운용하는 주택도시기금 사용 목적 위배 등을 이유로 들며 '대통령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요청하겠단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야당에 맞설 뿐 본질적 문제인 HUG 재정 악화와 보증 사고 해결책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남 얘기 아닌 '천조국'…손실 '최대'
 
HUG의 몸집은 현재 '초고도비만' 상태입니다. 지난 연말 국회는 보증 가입 중단 사태 해소를 위해 법정자본금을 현행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늘리고, 자기자본 70배인 보증한도를 90배까지 확대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보증한도가 900조원까지 늘어난 겁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는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에서 조사 분석하는 IBK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 12곳 가운데 압도적 1위입니다. 2위인 주택금융공사 정책금융 잔액이 123조6000억원(2022년)이란 사실에 비춰보면 재원 마련에 물음표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2027년까지 한시적 조치이긴 하나, 국방 예산이 1000조원에 육박하는 미국을 칭하는 '천조국'이란 용어는 다른 의미에서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게 됐습니다.
 
HUG 산하기관인 주택도시금융연구원이 지난 4월 누리집을 통해 공개한 '2023년 주택보증 통계' 자료에 따르면, HUG의 전체 보증잔액은 이미 지난해 말 기준 618조2549억원으로 올해 정부 예산 657조원 규모에 맞먹습니다. 전년 말 기록한 596조2090억원 대비 22조원 넘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속 빈 강정처럼 HUG 곳간은 줄줄 새고 있습니다. HUG는 지난해 당기순손실 3조8598억원을 기록, 2022년 4087억원 순손실에 이어 2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냈습니다. 특히 지난해 손실 규모는 1993년 HUG 설립 이후 최대치입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3월 4조원 규모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하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섰지만, 올해 전망되는 손실 규모만 7조원에 달합니다.
 
부채비율은 지난해말 기준 116.89%로 집계됐습니다. 2022년 35.35%에서 3배 이상 치솟았습니다. 금융자산 규모가 2022년 7조1352억원에서 2023년 3조2194억원까지 쪼그라든 영향입니다. 해당 기간 -2428억원에서 -3조9962억원까지 불어난 영업적자도 한몫 거들었습니다.
 
주택분양·전세금반환 보증 모두 '사고 폭증'
 
더 큰 문제는 최근 HUG가 보증을 선 주택 분양과 전세보증금 반환에 있어 사고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HUG 보증잔액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부문은 주택분양보증이었습니다. 213조9215억원으로 34.6% 비중에 달합니다. 전세금 반환 보증에 쓰인 123조7635억원보다 약 100조원이나 더 많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HUG 측은 주택분양보증의 경우 개인이 주 수요자인 전세금 반환 보증에 비해 사고가 적고 관리가 잘 된다는 입장이지만, 최근 지표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양경숙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 2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21~2022년 한 건도 없던 HUG 분양 보증사고는 지난해에만 14건 발생했습니다. 사고액은 1조1210억원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가 지속된 2010년 2조1411억원 이후 13년 만의 최대치입니다. 올해 역시 4월까지의 분양보증 사고액은 4865억원으로 1년 전보다 7.4배 급증했습니다.
 
특히 올해 초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 수순에 돌입한 태영건설의 14개 사업장(1만2395가구)에 HUG가 분양보증한 규모도 약 2조원에 이릅니다. 만약 태영건설 사업장들이 공사를 멈출 경우 HUG의 부담은 가중됩니다. HUG가 주택분양보증을 통해 분양 계약자에게 이미 납부한 분양대금(계약금·중도금)을 환급해야 할 일이 생길 수 있어섭니다.
 
이런 상황에 최근 금융당국은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표면화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손실이 유동성 위험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3월 실시한 HUG·주택금융공사(HF)의 PF 사업장 보증을 기존 25조원에서 30조원으로 늘린다고 발표했습니다.
 
HUG의 전세금 반환 보증잔액도 폭증 추세입니다. 2019년 49조3930억원이었던 잔액이 최근 5년간 2배 넘게 불어났습니다. 전세사기를 겪은 세입자 대신 갚는 '대위변제액'은 지난해 3조5544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3년 사이 약 7배 증가한 겁니다.
 
반면 회수율은 2019년 58% 수준에서 10%대 중반까지 떨어졌습니다. 지난해 HUG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내준 금액 3조5544억원 중 5088억원만 회수됐습니다. 14.3%밖에 안 되는 수준입니다. 통상 경매가 이뤄지면 채권 회수까지 2~3년 소요되기에 회수율이 낮아진 겁니다.
 
HUG에 정통한 관계자는 "국회가 숫자놀음에 불과한 HUG 보증 배수를 90배까지 올릴 때 어떤 근거로 산출했는지 의문"이라며 "보증만 막 내주다 지금처럼 세수가 안 걷히고 경기가 어려워져 사고로 인한 손실 확대로 HUG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에 놓인다면 그건 국가신용이 무너지는 일"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지난 4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HUG의 역할' 토론회 현장. (사진=뉴시스)
 
임지윤·신유미 기자 dlawldbs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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