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이례적 급발진…‘선거개입’ 논란 불가피(종합)
조희대 대법원장,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선고
대법, "'초고속 심리'는 선거법 취지에 따른 것" 자찬
법조계 "대법원이 정치적 논란 한복판에 뛰어들어"
'반대의견' 대법관들 "'수사기관·법원, 선거개입 우려"
2025-05-01 19:07:39 2025-05-01 19:09:39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상고심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지난 3월26일 서울고법이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때로부터 불과 36일 만입니다. 대법원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결정한 걸로 따지면 9일 만입니다. 대법원이 6·3 대선을 한 달 남겨 놓은 시점에서 '급발진'에 가까운 속도전을 보이자 정치권과 법조계 모두 ‘사법부의 대선개입’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오후 3시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심리에 참여한 대법관 12명 중 10명의 다수의견에 따른 결과입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며 입술을 다물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법원은이 조희대 대법원장 주도로 이 후보 사건의 심리와 선고를 초고속으로 진행했습니다.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의 경우 1심 선고는 검찰 기소로부터 2년2개월 만에 나왔습니다. 2심 선고는 1심 선고로부터 4개월10일 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 선고는 2심 선고로부터 36일 만입니다. 
 
사실 조 대법원장은 그간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6·3·3 원칙’(1심 6개월, 항소·상고심 각 3개월 이내 선고)을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에 이 후보의 사건이 접수된 건 지난 3월28일입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22일 이 사건이 배당되자 직권으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데 이어, 당일 합의기일까지 진행했습니다. 이틀 뒤인 24일 두 번째 합의기일을 열고 일주일 뒤인 이날 선고했습니다. 법조계에서 '이례적인 속도전'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속전속결 심리 과정부터 대법원이 21대 대선 과정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습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배당과 동시에 전원합의체 회부, 첫 심리까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을 보면, 대법원이 모종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며 “대법원이 어떤 식으로든 대선에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의 속도전이 평소 대법원의 관행과도 결이 다르고, 다른 사건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꼬집은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심리기간이 너무 짧은 탓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이 후보의 '원심 확정' 판결, 즉 최종 무죄를 점치는 분석이 우세했습니다. 실제로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의 검찰의 수사와 2심까지 넘어오면서 쌓인 사건기록은 20만쪽에 달하는 걸로 전해졌습니다. 아무리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12명의 대법관들이 기록을 공람한다고 할지라도 그 짧은 시간 안에 20만쪽의 기록을 소상히 살필 수 없고, 결국 대법원이 이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의 판결을 준용할 것이라는 관측이었습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사진=뉴시스)
 
하지만 대법원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제1 야당의 대선 후보에게 유죄 취지 판결을 내린 겁니다. 
 
대법원은 이날 선고를 하면서 신속 판결을 자화자찬했습니다. 대법원은 선고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절차에 관련한 판결 의의에 대해 “선거법 취지에 따라 신속하고 집약적으로 깊이 있는 집중심리를 해 선거법 위반 사건의 적시 처리를 도모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약 2년6개월 걸린 1·2심에서의 절차 지연과 엇갈린 실체 판단으로 인한 혼란과 사법 불신의 강도가 유례없다”고 인식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대법원은 외국 사례도 언급했습니다. 대법원은 “미국 연방대법원은 2000년 부시 대통령과 엘 고어 민주당 후보가 경쟁한 대통령선거 직후 재검표를 둘러싸고 극심한 혼란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사건 접수 불과 3~4일 만에 재검표 중단을 명하는 종국재판을 내려 혼란을 종식시켰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대법원을 향해 질타가 쏟았습니다. 대선을 불과 한달 앞두고 1야당 대선 후보의 행보에 사실상 제동을 거는 선고는 선거개입이라는 주장입니다.
 
민주당 사법정의실현 및 검찰독재대책위원장인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사상 초유 대법원의 대선 개입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역사는 오늘을 ‘사법 정의가 죽은 날’로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고작 9일 만에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을 국민이 대법원에 주지 않았다”며 “대법원이 설익은 법리로 국민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심지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반대의견을 낸 2명의 대법관(이흥구·오경미)도 조 대법원장 등 다수의견에 대해 ‘선거개입’을 우려했을 정도입니다. 두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선거의 공정성을 내세워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의 적용을 매개로 수사기관과 법원이 선거 과정에 개입하는 통로를 여는 것은 선거의 자유를 해치고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대법원이 선례의 방향성에 역행해 선거의 공정성을 내세워 허위사실공표죄의 적용범위를 넓히는 해석 방향을 취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후퇴시키는 퇴행적인 발상”이라며 “특히 (다수의견의) 해석 방향이 검사의 기소편의주의와 결합할 경우 민주주의 정치와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가해지는 위험은 심각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이 1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상고심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한 직후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대법원의 선고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날 선고에 대해 법조계는 사법부 신뢰가 뿌리째 흔들렸다고 한탄했습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선이 한 달 밖에 안 남은 국면에서 파기환송 판단을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는지 고민이 든다”며 “대법원이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대법원 설명처럼 이번 선고로 혼란이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며 “파기환송심에 불복해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이 공직 후보자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좁게 해석, 오히려 유권자의 선택만 어렵게 만들었단 지적도 나옵니다. 민병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모든 후보가 방송에 출연해 무조건 모른다고 할 것”이라며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모든 맥락에서 후보자의 말을 판단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앞으로 마음에 안 드는 공직 후보를 거르겠다는 것”이라며 “대법원마저 이러면 국민들이 사법부를 신뢰하겠나”라고 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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