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씨가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광장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파면 선고까지 꼬박 123일 동안 시민들은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남태령에서 내란을 막기 위해 온몸으로 맞서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뉴스토마토> K평화연구원은 ‘시민영웅 1천명 찾기 프로젝트’를 통해 광장을 지켰던 시민들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기록했습니다. (편집자)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여의도 근처에서 국회의사당으로 급히 달려갔어요. 국회 쪽으로 이동하는 시민들이 많았고, 경찰들도 군데군데 바리케이드를 치고 배치돼 있는 게 보였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동 중에 횡단보도 신호를 지키고 있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완기씨는 계엄 당일 시민들이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에 감탄했다고 말했습니다. 비상계엄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에 모인 시민들이 강하게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서도 혹시 모를 사고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는 겁니다.
조씨는 경기도 군포에서 활동하는 9988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합니다. 윤석열씨 탄핵 정국 땐 조합원들과 함께 꾸준히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9988협동조합은 군포에서 은퇴한 지역 주민들이 주말에 공동 텃밭을 운영하고 '인생 이모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만든 협동조합입니다.
조성범 조합장은 “함께 농사를 짓고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노후 생활을 보람 있게 보내자는 취지로 모였다”며 “조합을 통해 지역에서 인문 예술 강좌나 장학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50~70대가 대부분이라 보수적이기 쉽지만, 지난 박근혜 국정농단 촛불집회 때도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이번 탄핵 집회도 함께 힘을 모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거의 매일 집회가 열리곤 했는데, 조합원들이 서로 자발적으로 연락을 해서 집회에 참여했다”며 “나중엔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깃발도 만들었다. 지역에서 작지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길 바랐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당일, 서울 여의도 국회대로에 모인 시민들이 ‘계엄 철폐’를 외치고 있다. (사진=홍은기씨 제공)
울산 집회에선 여성 율동패 ‘넘다’ 회원들(이숙희·이선영·김근숙·이태옥·강원영·황애정·박정미·양수경·주은희·이미자)이 윤석열씨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과 함께했습니다. 넘다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에서 상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응원하고 집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결성한 율동패입니다.
시민단체 윤석열퇴진울산운동본부 관계자는 “넘다는 노동자 투쟁 현장을 넘어 광장 집회에서도 투쟁가는 물론 트로트나 아이돌 노래까지 소화해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대부분 상근 활동가들이라 노조 일로도 많이 힘들고 평소 이런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집회 현장에서 원하면 언제든 달려와준 고마운 영웅들”이라고 소개했습니다.
12·3 비상계엄 선포라는 초유의 사태가 빠른 시간 내 일단락될 수 있었던 건 국회의 신속한 계엄 해제 의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선 국회 사무처 직원들의 신속한 대처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 안건을 의결하려면 국회의장과 의원들뿐 아니라 본회의 진행을 위한 운영 인력이 필수적입니다.
국회 본회의장의 전자 시스템 관리를 담당하는 이광복 대신정보통신 이사는 계엄 선포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가서 본회의장 서버를 가동시켰습니다. 그는 경찰에 의해 봉쇄된 국회에 진입하기 위해 시민들을 도움을 받아 담을 넘어서 국회로 들어갔습니다. 계엄 당일 김영해 국회사무처 디지털정책담당관실 주무관은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을 작동시키고 전자투표 시스템을 운영했습니다.
국회가 계엄을 해제하는 상황을 국민들이 지켜볼 수 있었던 건 국회 방송 제작을 담당하는 황육익 뉴미디어영상과 계장이 당시 본회의 진행 과정을 생중계했기 때문입니다. 김영진 의사국 의정기록과 주무관은 계엄의 밤에 혹시 모를 정전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비, 본회의 개의부터 산회 순간까지 발언 하나하나를 회의록에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당일,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대로에서 군 차량을 막고 국회 정문을 지키고 있다. (사진=유미경씨 제공)
지난해 12월 예상치 못한 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시민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깨질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국회와 광화문, 남태령, 또 각 지역의 광장에 함께 모인 이유입니다.
자영업자 남궁경철씨는 “계엄 소식을 듣고 택시를 운행하는 지인과 수원에서 국회로 출발했다. 여의도 근처 도로 통제가 심해서 간신히 국회 정문에 도착했는데, 마침 계엄 해제가 의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시간이 지나도 윤석열씨의 계엄 해제 발표가 나오지 않아서 이후에도 한동안 다른 시민들과 국회 정문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는 “집에서는 불안과 분노 때문에 감당이 안 됐는데, 국회에 가서는 그나마 좀 마음이 안정됐다”며 “(윤씨가 계엄을 해제한) 오전 4시쯤 다시 수원으로 와서 잠깐 자고 장사하러 나갔다”고 말했습니다.
김포에 사는 홍은기씨도 계엄 당일 국회로 향했습니다. 그는 계엄 포고령을 보고 혹시 돌아오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근처 사는 친한 언니에게 고양이들을 부탁하고 3일치 밥과 물을 챙겨주고 집을 나왔습니다. 홍씨는 “국회대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계엄 철폐’를 외쳤다”며 “다행히 계엄령이 해제되고 군인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 같이 환호했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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