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은행권에서 시재금(영업점 보관 현금) 횡령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내부통제 강화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은행들은 지점장이 직접 금고를 개문하고 시재 보유 한도와 권종을 제한하는 등 내부통제 강화 지침을 발표했으나 횡령 사고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소액이지만 빈번히 발생하는 시재금 횡령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고액 현금 다발서 '밑장 빼기'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신한은행의 서울 소재 한 지점에서 시재금 횡령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점에서 시간제 RS(은행 창구에서 대면 업무를 담당) 직군으로 일한 A씨는 창구에서 고객이 거액의 현금 다발을 입금 처리해달라 했는데 이 중 일부를 챙기다가 CCTV에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확인 결과 다행히 피해 금액은 미미했습니다. 은행 측은 해당 행위가 적발된 뒤 A씨를 바로 면직 처리했으며, 형사 고발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은행 내부에서는 고객이 창구에 고액을 가져올 때는 대부분 5만원권을 다발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데, 지폐 뭉치의 아랫장을 빼 가는 '밑장 빼기' 방식으로 현금을 빼돌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금융사고 공시 대상인 10억원보다 낮은 금액이라 별도로 공시하지 않았다"며 "해당 직원 정보라 피해 금액을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려우며 내부적으로 횡령을 발견해 면직 처리한 것으로 알아달라"고 했습니다.
앞서 올 들어 신한은행은 2건의 금융사고를 공시한 바 있습니다. 지난 2월 외부인에 의한 사기 혐의로 19억9800만원의 금융사고가 났다고 공시했습니다. 세종시 대규모 대출 사기 사건 피의자들이 여러 은행에서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불법 대출을 받으며 발생한 것입니다. 은행 내부에서 발생한 사고는 아니지만 은행들이 대출을 내주는 과정에서 대출 당사자 확인 절차, 서류 확인 절차 등에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어 지난 3월에는 신한은행 자체 감사 중 서울 한 지점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이 횡령한 사실을 확인해 금융감독원에 보고했습니다. 신한은행이 파악한 횡령 금액은 약 17억원으로 해당 직원이 약 3년여에 걸쳐 횡령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직원 횡령 사건 발생 이후 신한은행은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해당 직원을 즉시 면직 처리한 뒤 지점별 마감 시재 보유 한도를 내리고 권종도 제한하는 등 내부 지침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직원 횡령 사고가 발생하면서 보다 더 강화된 내부통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재금 소액 횡령 빈번
다른 은행에서도 최근 시재금 횡령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바 있습니다. NH농협은행은 지난 5월 경기도 의왕시 한 영업점에서 근무하던 6급 계장보 B씨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13차례에 걸쳐 시재금 약 2500만원을 횡령한 사실을 내부 점검을 통해 적발했습니다. 농협은행은 B씨를 경찰에 고발해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같은 지역 내 다른 영업점에서도 신입행원 C씨가 시재금 약 200만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농협은행은 두 사건 모두 인지한 직후 해당 직원에 대한 인사 조치를 단행한 뒤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당시 농협은행장이 직접 시재금 검사에 나서는 등 내부통제 강화 캠페인을 벌이던 가운데 발생한 횡령 사고여서 체면을 구겨야 했습니다.
은행권에서는 시재금 횡령이 가장 빈번한 금융사고로 꼽히는 만큼 시재금을 원천적으로 직원들이 유용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시재금 횡령은 은행 사정을 잘 아는 직원이 시스템 허점을 악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요. 예를 들어 은행 전산 시스템에 자신이 보유한 시재금을 입력하는 과정에서 실제 보관 금액보다 높게 작성하는 것입니다.
시재금 횡령이 발생해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내부 직원이 은행 시스템에 정통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입출금 절차와 회계 기록 방식 등 내부통제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점검을 피할 수 있는 허점을 노리고 금액을 조작하거나 장부를 맞추는 방식으로 범행을 은폐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소액의 금액은 전산 실수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 고의적인 횡령이 문제시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액이 크지 않더라도 시재금 횡령은 한번 시작하면 상습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며 "처음엔 적은 금액일지라도 쌓이면 금액이 커지고 이는 곧 은행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 각별한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시재금 횡령은 은행 시스템의 근본적인 허점을 드러내는 사례로 1만원을 유용하더라도 범죄이기 때문에 엄격히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아예 시재금을 직원들이 원천적으로 유용할 수 없게 조치하는 방식도 필요해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은행권에서는 시재금 횡령이 가장 빈번한 금융사고로 꼽히는 만큼 시재금을 원천적으로 직원들이 유용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사진은 은행 창구에서 5만원짜리 현금 다발을 훔치려고 하는 모습을 인공지능 이미지로 구현한 모습. (사진=챗GPT)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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