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일본은 생리학·의학상과 화학상을 받았으며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27명이 되었다. 이 밖에도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와 원폭 피해자 단체가 평화상을 수상했고, 문학상 수상자도 2명이 있다. 한국은 문학상과 평화상 수상자가 각각 1명씩 있지만 아직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는 없다.
한국은 스포츠 경기도 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 하고, 각종 지표에 대한 평가는 일본과의 비교에서 출발한다. 물론 국내 언론도 '27 대 0'이라는 격차를 지적하며 윤석열정부의 연구비 삭감이나 이공계 인재의 의대 집중을 개탄하기는 했다. 그러나 과연 돈만 많이 투입하면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는가를 물을 필요도 있다. 실제로 한국의 국내 총생산과 대비해 연구비가 차지하는 비율이나 절대적인 규모가 이제는 일본에 비해 심각하게 낙후되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일본 과학자들은 70대 중반의 노교수들이다. 이들은 일본이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라고 큰소리치던 시절인 70년대,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에서 학위과정을 밟으며 연구자로 성장한 세대이다. 과거의 좋았던 시절에 쌓은 실적이 평가받은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면 빈곤에서 벗어난 한국도 과학 부문 노벨상을 받는 것은 시간만 지나면 해결될 거라고 느긋하게 생각하면 되는 일인지 궁금하다. 개인 소득이 일본보다 높아졌으니 한국도 이제는 돈 얘기를 떠나 대학이나 연구소의 실태에 초점을 맞춘 논의가 필요하다.
올해의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들은 모두 교토대학 출신들이다. 교토대는 지금까지 10명의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서울대학이 정점에 있는 대학 서열 구조에 익숙한 한국 언론은 지방 대학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평가를 하지만 일본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촌스러운 얘기다. 1949년에 최초의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 유가와 히데키도 교토대학 출신이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교토에 자리 잡고 있는 교토대학이 수도 한복판에 있는 도쿄대학보다 학문적 권위가 낮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없다. 도쿄대학 출신 노벨상 수상자는 9명이다. 여기에는 평화상 1명, 문학상 2명이 포함되어 있다.
1987년에 교토대 출신으로 미국 MIT 교수인 도네가와 스스무가 생리학·의학상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귀국한 도네가와는 공항에서 몰려든 기자들에게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일본에 있었으면 노벨상을 받은 연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언론도 예산이 풍부한 도쿄대학이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를 가난한 교토대학만큼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논쟁을 벌였다. 당시 어느 논객은 도쿄대학 교수들은 정부 프로젝트가 너무 많아 기초연구를 할 시간이 없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반면에 교토대학은 강의 시간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카페로 자리를 옮겨 끝장 토론을 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었다. 즉, 기초연구의 출발점인 비판적, 이론적 사고를 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진단이었다. 즉, 대학에는 돈이 물론 있어야 하지만 학풍이 더욱 중요하다는 얘기다.
한국도 김대중정부 시절에 과학 부문 노벨상을 획득한다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담당 조직을 만든다, 노벨상 수상자를 교수로 초빙해 특별 훈련을 실시한다는 등의 소란을 떨다가 어느 틈엔가 조용해졌다. 이후에도 언론이 수시로 띄우는 스타 과학자가 노벨상 후보로 등장하다가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정부 시절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사진 조작 사건이었다. 당시에는 범정부적으로 황우석 노벨상 수상 추진위원회를 만들자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물론 양식 있는 학계 인사들은 “상은 연구 결과에 대한 평가이지, 상을 받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이 경쟁적으로 황우석을 성원하는 열기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지금 정부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교육 개혁의 핵심 정책으로 설정하고 있다. 한국도 각지에 연구 중심 대학을 10개 만들면 입시 지옥이 없어지고 인구 유출로 소멸 위기에 빠진 지방도 활성화되며, 균형 발전이 이루어질 거라는 장밋빛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개교 70년이 다가오는 서울대가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빠져 있다. 즉, “어떠한 학풍을 가진 대학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문제의식이 생략된 상태에서 예산만 증액하면 엄청난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다. 신임 교육부 장관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은 서울대 10개를 어떻게 만들고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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