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올해 잇따라 내놓은 6·27 대책과 10·15 대책은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진정시키고 가계부채의 급증세를 억제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최근 서울의 아파트 시장을 중심으로 갭투자가 가격 급등을 이끌며 시장 과열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를 제어하기 위한 정부의 대응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일각에서는 10·15 대책이 시장의 과도한 위험을 차단하는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다만 이번 대책이 얼마나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정부의 조치가 주로 담보인정비율(LTV) 축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강화, 실거주 요건 강화 등 신규 주택 구입자와 신규 차입자를 겨냥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이런 규제가 수요를 억제해 과열된 시장을 가라앉힐 수 있지만, 이미 대출을 받은 기존 차입자나 주택 보유자에게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물론 정부가 적법하게 이뤄진 기존 대출의 상환을 강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이 신규 대출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문제는 규제의 비대칭성이 오히려 ‘영끌’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대출 규제가 강화될수록 시장에서는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불안심리가 퍼진다. 다음에는 신용 문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힘들더라도 이번 기회에 대출받아 집을 사두자”는 생각이 무주택 실수요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퍼지면서, 규제가 오히려 불안심리를 자극해 ‘패닉바잉(panic buying)’으로 이어지는 역설이 나타난다.
이런 패턴은 과거에도 반복됐다.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시장이 잠시 주춤하다가, “규제가 더 강해지기 전 매수하자”는 선행 수요가 몰리며 가격이 다시 반등하곤 했다. 주택 공급의 경직성은 당겨진 수요를 가격으로 바로 밀어 올린다. 새 매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매도자들은 불확실한 국면에서도 호가를 별로 낮추지 않는다. 그 결과 거래가 다시 살아나는 시기에는 호가 주도(ask-driven) 가격 상승이 나타난다. 언론과 시장에서는 “규제에도 버티는 시장”이라는 서사가 형성되고, 이 서사는 다시 기대를 강화하며 ‘기대–거래–가격’의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 정책이 신규 대출에 초점을 맞춘 결과 나타나는 부작용을 완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뉴시스)
역설을 완화하려면 신규 차입자에 대한 문턱만 높이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격 변수에 직접 영향을 미침으로써 기존 차입자와 금융기관이 책임을 나눠 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10·15 대책에서 향후 부동산 보유세 강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보유세는 주택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을 높여 수요를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조세 저항과 형평성 논란 등 부작용이 커 현실적으로 추진이 쉽지 않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도 고려할 수 있다. 실제로 2022년 여름부터 금리 인상이 단행된 이후 주택가격이 하락세로 전환된 바 있다. 그러나 금리 조정은 부동산 시장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세금과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것이 어려우면 남는 선택지는 자본 규제를 통한 간접적 접근이다. 가계·부동산 대출의 위험가중치를 높이거나, 은행들이 완충자본(Buffer Capital)을 더 쌓도록 요구하되, 신규뿐 아니라 기존 대출에도 적용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은행은 가계·부동산 대출에 더 많은 자기자본을 쌓아야 하고, 자본조달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대출금리를 인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앞당겨지는 수요’의 유인이 약화되고, 기존 대출을 포함한 전체 대출 규모가 줄어드는 효과를 낳는다.
가계·부동산 대출금리가 오르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규제 강화에 따른 모든 고통을 신규 차입자에게만 집중하는 것에 비해 형평성 면이나 금융 안정성 면에서 더 낫다. 은행이 미리 위험에 상응하는 자본을 쌓게 되면, 부동산 가격 하락 등 위기 때 금융시스템의 충격 흡수 여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금흐름을 보다 생산적 부문으로 옮겨 생산적 금융을 앞당기는 효과가 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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