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실에서 주주가치 극대화 경영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밀턴 프리드먼의 기업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 학생들은 대체로 수긍하는 표정으로 듣는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을 읽어보면 적지 않은 학생들이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래도 프리드먼이 더 현실적인 것 같아요.” “결국 기업은 돈을 버는 곳 아닌가요.”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 프리드먼의 이 명제는 기업이 이윤 극대화에 집중하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소비자의 필요가 충족되고 사회 전체의 후생도 함께 커진다는 논지를 담고 있다. 능력보다 연줄이 중요하게 작동하고 노력해도 출발선이 다른 사람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이 세계관은 매력적이다. 성과가 숫자로 측정되고 결과로 평가받으니 공정하고, 이윤이라는 단일 기준이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며, 이윤 극대화에 집중하는 기업이 개인도 사회도 잘되게 만든다는 점에서 성공의 원리로도 읽힌다. 그들에게 이 세계관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자신의 회사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전기차와 우주 개척에서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둔 일론 머스크다.
그런데 머스크의 성공은 실제로 프리드먼이 말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영국 경제학자 존 케이는 그의 저서 『21세기 기업』(The Corporation in the 21st Century)에서 현대 기업의 진짜 자산은 설비나 자본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축적한 역량과 지식의 총합, 곧 집단지성이라고 말한다. 이 시각에서 머스크의 성공을 다시 읽으면, 그것은 한 천재의 이윤 추구가 아니라 집단 역량의 효과적인 발휘였음이 확인된다. 테슬라는 머스크가 창업한 회사가 아니었다. 2003년 다른 사람들이 설립한 회사에 이듬해 투자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 합류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스페이스X의 로켓은 수백 명의 엔지니어들이 여러 차례의 실패를 거치며 만들어낸 것이다. 머스크의 진짜 목적은 이윤이 아니었다. 그의 목적은 전기차와 우주 개척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여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서로 다른 역량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하고 밀어붙이는 능력이 성공의 원천이었다. 이때 그 역량을 어떤 목적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결집시키는가도 중요하다. 머스크의 제국이 새로운 형태의 권력 집중과 사회적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이 문제와 관련이 깊다.
그렇다면 이윤만을 목적으로 삼는, 곧 주주가치 극대화 경영 방식은 이 역량의 연결과 조합을 실제로 키우는가? 케이의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반대다. 현대 기업에서 지식은 조직 전반에 분산되어 있고, 그것을 하나의 문제 해결 역량으로 통합하는 것이 관건인데, 주주가치 극대화 이념은 그 통합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단기 수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압박 아래 경영진은 연구개발이나 안전 유지에 써야 할 비용을 삭감하고, 모든 관계를 거래와 숫자로 환원하면서 조직 안에서 쌓이던 신뢰와 협력의 토대를 침식한다. 단기 성과에 대한 보상 체계가 정교화될수록, 기업의 진짜 경쟁력이지만 측정은 어려운, 창의와 협력과 장기적 역량 축적이 오히려 약화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 역설의 비극적 결말을 보여주는 사례가 보잉이다. 한때 위대한 엔지니어들의 회사였던 보잉은 주주가치 극대화 경영이 본격화된 이후 막대한 자금을 자사주 매입에 쏟아부었다. 새로운 기종을 개발하는 대신 낡은 기종을 무리하게 개조한 결과가 2018년과 2019년의 737 MAX 추락 참사였고, 346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려다 주주가치의 실제 원천을 파괴한 것이다.
이 이념을 가장 열성적으로 실천한 사람들 안에서도 반성이 나왔다. 주주가치 극대화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GE의 잭 웰치는 만년에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아이디어”라며 이 이념을 철회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반성이 나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산을 운용하는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2018년과 2019년 전 세계 주요 기업 CEO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고유한 목적 없이 이윤만을 좇는 기업은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으며 결국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핑크에 따르면,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이 아니라 고유한 목적의 달성에 있으며, 그것은 이해관계자를 위해 매일매일 가치를 창출하는 일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웰치와 핑크의 반성이 가리키는 방향은 같다. 기업의 성공은 이윤을 목적으로 삼는 데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가치 있는 기업들이 실제로 파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단서가 있다. 스마트폰, 검색,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가치는 원자재나 노동, 자본 등 개별 생산요소의 투입량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치의 상당 부분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함께 축적한 지식과 역량의 총합이다. 이 집단적 역량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협력이 살아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발휘된다. 그렇게 될 때, 기업은 주주만이 아니라 고객·직원·공급업체·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 함께 가치를 창출하고 나눈다. 이 원리가 최근에 새로 등장한 것은 아니다. 제약회사 머크의 창업자 조지 머크 2세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의약품이 사람을 위한 것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의약품은 이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윤은 그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더 잘 기억할수록, 이윤은 더 커졌습니다.” 이것은 이상주의적 선언이 아니다. 이윤이라는 목표에 집착하지 않을 때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역설, 그것이 지속 가능한 성공의 원리다.
기업은 돈을 버는 곳인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기업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 곳인가? 현대 기업은 구성원들이 집단지성을 키우고 그 차별화된 역량을 결집하여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공동체다. 그러나 그 강력한 힘을 누구의,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가도 그만큼 중요하다. 그 공동체가 이해관계자 모두를 위한 가치 창출에 집중할 때, 이윤은 목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결과로 따라온다. 이 원리가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지, 역량의 동원이 소수의 야심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진정한 공동선을 향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은 기업 안팎의 모든 이해관계자의 몫이다. 기업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는 곳인가라는 질문은 기업가와 경영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박종현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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