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째 향하는 대법관 공백…법조계 우려에도 제청 미룬 채 이례적 '새 절차'
제청 지연 90일 가까이…대법원, 새 후임 절차 착수
기존 후보군 재추천 쟁점…"절차 혼선" 우려도 제기
2026-05-28 17:20:42 2026-05-28 17:32:39
[뉴스토마토 정주현 기자]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제청이 90일 가까이 표류 중인 상황에서 대법원이 9월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 후임 찾기에 착수했습니다. 법조계에선 이번 사안이 단순한 인선 지연을 넘어 후보 추천 절차의 혼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HD현대중공업 원청 사용자성 쟁점 단체교섭 청구와 두피·서화 문신 시술 관련 무면허 의료행위 등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노 전 대법관 후임 후보군은 이미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거쳐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올라간 상태입니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은 현재까지 최종 1인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제청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추천위가 제시한 후보는 4명입니다. 김민기(사법연수원 26기) 수원고법 고법판사, 박순영(25기) 서울고법 고법판사, 손봉기(22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윤성식(24기)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입니다. 
 
헌법 제104조 2항에 따른 대법관 임명은 통상 추천위가 후보군을 압축하면 대법원장이 이 가운데 1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하고, 대통령이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추천위에서 후임 후보군을 압축한 뒤에도 대법원장의 최종 제청이 90일 가까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장의 헌법상 제청권 행사와 사법부 구성 책임이 사실상 멈춰 선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됩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지난 26일 성명을 내고 "사법부는 '1인 결원' 상태를 해결할 의지도, 국민을 납득시킬 설명도 내놓지 않은 채 오는 9월 퇴임 예정인 이흥구 대법관의 후임 추천 절차를 기계적으로 밟기 시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용대 민변 사법센터 소장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제청권이라고 하면 단순히 권한을 행사한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헌법상 의무라고 볼 수 있다"며 "지금은 헌법상 의무를 행사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임명 지연이 아닌 헌법상 의무 불이행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대법관 임명은 대법원장의 제청권, 국회의 동의권, 대통령의 임명권이라는 세 기관이 서로 협력하도록 되어 있다"며 "그 출발은 대법원장이 제일 처음인데, 제청을 하지 않으면 다음 절차가 시작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청 지연은 기존 후보군의 처리 문제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 전 대법관 후임 후보군 4명은 이미 추천위를 거쳐 대법원장에게 이름이 올라갔지만, 이들 중 누구도 제청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흥구 대법관 후임 절차가 별도로 시작된 겁니다. 이에 기존 후보군이 노 전 대법관 후보군으로 그대로 유지되는지, 이 대법관 후임 절차에서 다시 추천될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별개의 절차가 새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추천된 기존 후보군이 이 대법관 후임 후보군에 다시 포함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제한되는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추천위에서 그렇게 결정하면 추천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법조계에선 선행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행 절차가 시작된 것 자체가 절차상 혼선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노 전 대법관 후임 제청이 먼저 이뤄졌다면 탈락한 나머지 후보들이 이 대법관 후임 절차에서도 후보에 올라 재평가받을 수 있지만, 지금처럼 두 절차가 겹치면 후보자들은 기회 자체가 박탈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는 이런 상황 자체가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1차, 즉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절차를 먼저 끝냈어야 탈락할 수 있는 3명의 재추천 기회, 대법관이 될 기회를 유지할 수 있었다"며 "지금은 최소한 한 명은 추천받을 기회를 잃고, 중복을 피하려다 나머지 3명도 기회를 잃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유능한 법관이 대법관으로 취임할 기회를 잃게 되고, 국민 입장에서도 최적의 대법관 후보를 잃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각에선 대법원과 대통령실 사이의 인선 갈등이 후임 제청 지연의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조 대법원장이 노 전 대법관 후임과 이흥구 대법관 후임 카드까지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대통령실과 '일괄 타협'을 시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입니다. 
 
정주현 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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