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의사결정, 속도와 통제 사이에서
2026-06-08 06:00:00 2026-06-08 06:00:00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이 한창이다. 해당 프로모션이 진행되지 않았어야 한다는 점에는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사안의 심각성은 여러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하며, 그에 따른 경영진 책임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논란을 보며 사람들의 또 다른 궁금증은 ‘여러 단계의 결재를 거쳤는데 어떻게 이런 기획이 나올 수 있었을까’로 집약되는 것 같다. 기업 운영 원리라는 내재적 접근법으로 본다면, 이 사건은 오늘날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의사결정 구조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통제 장치가 존재했다. 광고는 제한된 매체를 통해 집행됐고 사전 심의를 받아야 했다. 내부 결재 역시 출력물을 들고 다니며 대면 승인받는 방식이었다. 자연스럽게 여러 단계에서 문제가 걸러졌다. 반면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소비자는 기업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를 신뢰하지 않는다. 브랜드는 인플루언서와 크리에이터, 수많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한다. 기업이 전달한 메시지는 순식간에 재가공되고 확산된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통제력은 현저히 낮아졌다.
 
그래서 기업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통제를 강화하면 속도가 느려지고, 속도를 높이기 위해 권한을 위임하면 리스크가 커진다. 몇 년 전 유통업계 임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젊은 고객층을 겨냥한 SNS 채널을 운영한 적이 있다. 그해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했다. 상위 조직장의 결재 없이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단 하나의 원칙만 제시했다. 사회적·법적 문제가 될 표현은 절대 하지 말 것. 애매한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상의할 것.
 
당시 대기업의 SNS는 대부분 안전했지만 재미없었다. 모든 문구를 수정하면서 젊은 세대의 감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는 실행 속도를 높였고, 담당자의 감각을 믿었다. 결과적으로 해당 채널은 젊은 고객층의 호응을 얻으며 성공 사례가 되었고 관련 기사에도 소개됐다. 그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 좋은 의사결정은 반드시 많은 결재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로는 명확한 원칙과 과감한 권한 위임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든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복잡한 시대다. 미디어는 개인 단위로 쪼개졌고, 작은 실수 하나도 사회적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경영진이 직접 통제할 수도 없다. 현재의 임원들이 성장했던 시대와 지금의 소비자가 살아가는 시대는 다르기 때문이다. 지나친 개입은 시대착오적 의사결정을 만들 위험도 있다. 반대로 관련 부서 모두를 결재선에 넣고 수많은 합의와 승인을 거치게 되면 시장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특히 불확실성이 높은 시장에서는 완벽한 결정보다 빠른 실행과 학습이 중요하다. 늦은 의사결정 자체가 사업 리스크가 되기도 한다.
 
많은 기업들이 결재와 합의를 비슷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둘은 다르다. 결재는 책임지기 위한 절차이고, 합의는 리스크를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다. 문제는 책임을 분산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결재선을 만들거나, 속도를 높이겠다는 이유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권한을 위임하는 경우다.
 
세상은 앞으로도 더 빠르게 변할 것이다. AI는 기획과 실행의 속도를 더욱 높일 것이고, 디지털 미디어는 리스크의 확산 속도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재 단계를 늘리는 것도, 무조건 권한을 위임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조직이 공유하는 원칙이다. 무엇을 해도 되는지보다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명확히 정의하고, 애매한 상황에서는 즉시 상의할 수 있는 소통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복잡한 시대일수록 사후 통제는 어렵다. 문제가 발생한 뒤 책임을 따지는 것보다, 발생하기 전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결국 좋은 의사결정은 결재선의 길이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구나 같은 원칙을 공유하고 있는가, 그리고 애매한 순간에 얼마나 빠르게 소통할 수 있는가가 조직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송승선 커리어 작가, 『무경계 인간 호모 옴니쿠스』 저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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