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 뜸뜸, 여름 논의 목탁소리
2026-07-03 10:12:35 2026-07-03 10:12:35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1925년 최순애가 쓴 동시에 박태준이 곡을 붙인 동요 오빠 생각의 첫 구절입니다. 노래 속 뜸부기는 논에서 울고 있습니다. 동시 속 어린 화자가 일상을 이야기하며 뜸부기 울음소리를 담아낼 만큼, 그 소리가 당시 여름철 논에서 익숙한 소리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조류학자 올리버 루터 오스틴(Oliver L. Austin)은 『한국의 새(The Birds of Korea)』(1948)에서 뜸부기(Gallicrex cinerea)는 4월 말에 찾아와 11월 초에 떠나는 흔한 여름 철새로 기록하고, 경기도의 논에서 수집한 알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시와 노래, 학술적 기록으로 그 무렵 뜸부기는 한반도 논 어디서나 울던 새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침 이슬 맺힌 풀숲 사이에 뜸부기 수컷이 고개를 내민다.
 
그러나 요즘 논에서 뜸부기를 실제로 만나는 일은 노랫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울음소리 한 번 들으려 해도 논 가장자리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고, 가까운 곳에서 분명히 소리가 나는데도 끝내 모습을 보지 못하는 날도 있습니다. 논에는 언제나 여러 소리가 함께 들려옵니다. 바람에 스산이는 벼 소리, 풀숲에서 새어 나오는 풀벌레 소리,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 멀리 도로를 지나는 차량 소리와 그 차가 일으키는 땅 울림까지 한데 섞여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수많은 소리 사이에서 유난히 낮고 또렷한 울음이 들려옵니다.
 
"뜸, 뜸" 암컷을 부르는 수컷 뜸부기의 소리입니다. 스님이 목탁 두드리는 듯, 몸속 싶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호소인 듯 알쏭달쏭합니다. 낮으면서도 울림이 있어 한번 들으면 단번에 뜸부기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뜸부기라는 이름도, 뜸북새라는 옛 이름도 바로바로 이 울음소리에서 비롯됐습니다. 워낙 예민해 작은 움직임에도 놀라 풀숲으로 숨어 버리기에, 관찰하려면 숨소리조차 무음으로 참고 귀기울여야 합니다. 기다리다 보면 뜸부기가 얕은 물과 진흙을 부리로 더듬으며 수서곤충과 우렁이, 작은 물고기 같은 먹이를 찾는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뜸부기는 가늘고 긴 발가락으로 물풀과 벼 포기 사이를 소리 없이 걸어 다닙니다.
 
파주 임진강 일대의 논, 뜸부기를 만날 수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관찰은 해질 무렵과 이른 아침이 좋습니다. 종일 달아오른 들판의 열기가 조금씩 가라앉고 논둑의 풀잎과 벼 끝에 석양이 내려앉는 시간, 또는 밤사이 식은 들판에 아침이슬이 맺히는 시간에 뜸부기가 가장 활발히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 뜸부기는 논과 논둑을 오가다가, 한낮에는 더위와 햇빛을 피해 풀숲이나 덤불 속으로 몸을 감춥니다. 모내기를 마치고 벼가 아직 낮게 자란 5월과 6월은 그나마 모습을 보기 쉽습니다. 

뜸부기 수컷이 암컷을 찾아 날아가고 있다. 물풀과 벼 포기 사이를 소리 없이 걸어다니도록 진화한 가늘고 긴 발은 뜸부기의 특징이다.
 
어린 모를 일정한 간격으로 심은 아직 성기고 낮아 뜸부기의 몸을 다 감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울음이 들려온 쪽을 살피면, 논 위로 검은 몸을 드러낸 수컷을 찾을 수 있습니다. 번식기의 수컷은 온몸이 짙은 잿빛이고, 이마에서 정수리까지 붉은 이마판이 뿔처럼 솟아 있습니다. 한 계절 사랑을 위해 이마에 불을 밝히기로 한 걸까요. 몸길이 40센티미터쯤 하는 수컷은 33센티미터 남짓한 암컷보다 한결 크고 눈에 띕니다.
 
한여름 벼가 높이 자라면 뜸부기 찾기는 한결 어려워집니다. 논을 들여다보아도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의 벼만 보입니다. 무성한 벼가 뜸부기를 감추고, 구애의 울음도 차츰 잦아듭니다. 초록의 벼 사이 어딘가에는 둥지가 있습니다. 뜸부기는 벼 포기를 엮거나 논둑 풀숲의 줄기와 잎을 모아 둥지를 짓고, 6월에서 7월 사이 서너 개의 알을 낳습니다. 높이 자란 벼는 알과 어린 새들을 가려 주는 은신처가 됩니다.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어린 새를 기르는 한 해 번식이 모두 이 한 배미 논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번식이 끝나가는 늦여름이면 수컷의 화려한 깃은 암컷과 같은 갈색 줄무늬 깃으로 바뀝니다. 모내기 무렵 찾아와 벼가 익을 즈음 떠나기까지, 뜸부기의 여름나기는 벼의 한살이와 흐름을 같이 합니다.
 
논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먹거리를 길러 온 농경지이자, 수많은 생명이 숨 쉬는 습지입니다. 효율과 생산성만을 앞세운 개발 논리 속에서 논에 사는 많은 생물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뜸부기는 전국의 논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반세기 사이에 농지 정리로 풀 우거지던 논둑은 반듯하게 깎였고, 하천 정비로 농수로는 콘크리트로 덮였습니다. 뜸부기가 몸을 숨길 덤불과 생물다양성이 풍부하던 물길이 함께 사라진 것입니다. 농약 사용이 늘면서 수서곤충과 양서류, 물고기 등 뜸부기의 먹이가 되던 논의 생물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살 곳과 먹을거리를 잃은 뜸부기 개체수도 가파르게 줄었습니다. 뜸뜸 소리로 여름 들판을 메우던 뜸부기가 오늘날 멸종위기에 놓이게 된 까닭입니다.
 
뜸부기 울음소리 들리는 논에는 우렁이와 풀벌레, 개구리와 작은 물고기가 함께 살아갑니다. 이들이 사는 논이라야 뜸부기도 짝을 찾고 터를 일굴 수 있습니다. 뜸부기를 멸종위기로 만든 인과를 거꾸로 짚어보면, 회복의 방향도 얼핏 보입니다. 농약을 줄이고 논둑의 풀과 자연적인 농수로를 되돌려 논 안팎의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갈 곳을 남겨 둔다면, 뜸부기도 다시 늘어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라는 노랫말은 추억 속 한 구절이 아니라 다시 오늘의 논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될 테지요.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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