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퇴출 논란)②일본은 5년 기다려주는데 우리는 당장 퇴출?…시간만으론 부족한 코스닥 구하기
일본 퇴출 정책 2030년까지 유예, 상장 후 5년 경과 기업 대상
혁신을 기다려주는 일본 vs 45일 만에 숨통 끊는 한국
2026-08-09 12:53:00 2026-08-09 12:53:00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부실 상장사 퇴출은 글로벌 추세이나, 한국의 집행이 성급하고 퇴로가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는 이른바 '좀비 기업'을 신속히 솎아 내고 일시적인 주가 띄우기를 막겠다는 목적으로, 시가총액 요건 상향(코스닥 기준 최종 300억원) 완료 시점을 기존 2028년에서 2027년으로 1년 앞당기고, 당장 2026년 하반기부터 1차 상향된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주가 1000원 미만의 '동전주' 퇴출 요건을 신설하고, 반기 기준 완전자본잠식마저 즉각 실질심사 요건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건전성 확보라는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으나, 현장에서는 코스피 반도체주 중심의 변동성 장세로 코스닥이 소외당하는 점을 고려하지 않아 탁상행정이란 탄식이 나옵니다. 글로벌 주요 거래소들 역시 상장 유지 기준을 높이는 추세라지만, 그들이 제도를 운용하는 디테일과 한국의 획일적 속도전 사이에 치명적인 간극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9일 각국의 증시 퇴출 정책을 비교한 결과, 기술 기반 벤처 기업이 연구개발(R&D) 투자 단계를 지나 상용화와 실적으로 펀더멘털을 입증하기까지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일본 금융당국은 제도의 설계 단계부터 이 생리를 보듬어 주었습니다. 도쿄증권거래소(TSE)는 본래 신흥 기업이 모인 '그로스(Growth) 시장'의 상장 후 10년 경과 시 시가총액 40억엔(약 350억원)이 퇴출 기준이었습니다. 이후 상장 5년 경과 후 시가총액 요건을 100억엔(약 900억원)으로 대폭 높였지만, 그 적용 시점을 2030년 3월 이후로 넉넉하게 미뤘습니다. 기업에게 스스로 체질을 개선할 장기적인 유예기간을 준 것입니다. 심지어 기업들이 이익을 쥐어짜 내느라 미래를 위한 성장 투자를 억제하는 일이 없도록, 상위 시장이지만 시총 요건이 헐거운(유통 시가총액 10억엔) '스탠더드' 변경 요건 중 '이익액 1억엔'이라는 형식 요건마저 폐지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조급합니다. 당초 계획을 1년 앞당긴 것도 모자라, 관리종목 지정 후 퇴출에 이르는 시간적 여유마저 압축했습니다. 코스닥 기업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후 단 '90거래일 중 연속 45거래일' 동안 기준을 회복하지 못하면 즉시 상장폐지 수순을 밟게 됩니다. 장기적인 비전을 증명할 시간은커녕, 두 달 남짓한 기간 안에 단기 자금을 끌어와 주가를 방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가혹한 구조입니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해외 vs 절벽 앞의 코스닥
 
기준 미달 시 기업이 연착륙할 수 있는 '퇴로(안전망)'의 유무는 더 뼈아픈 차이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자본시장은 촘촘한 다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미국 나스닥은 글로벌 셀렉트(대형), 글로벌(중견), 캐피탈 마켓(소형 성장)으로 세분되어 있어 상위 리그에서 밀려나더라도 하위 리그로 강등되며 상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일본 역시 프라임, 스탠더드, 그로스로 시장이 명확히 나뉘어 있습니다. 그로스 시장에서 시총 요건을 맞추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허들이 낮은 스탠더드 시장으로 소속을 옮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마저 밀려나 상장폐지가 되더라도 끝이 아닙니다. 나고야, 후쿠오카, 삿포로 등 지방 증권거래소로 이전 상장해 주주들의 유동성을 보호하고 어떻게든 자금 조달 창구를 열어둘 수 있는 이중, 삼중의 2부 리그 인프라가 작동합니다.
 
한국의 코스닥 기업에게 퇴출은 곧 '절벽'입니다. 상장폐지가 결정되면 곧바로 K-OTC(장외시장)로 추락하거나 비상장사로 전락해 자본조달 줄이 끊깁니다. 코넥스(KONEX) 시장이 존재하지만 유동성이 턱없이 부족해 코스닥 강등 기업을 수용할 완충 지대로서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입니다.
 
미국도 최근 마련한 퇴출 정책은 훨씬 엄격합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7월 나스닥의 초소형주 제재 룰(시총 500만달러 미만 30일 지속 시 유예 없이 즉각 거래 정지)을 승인했습니다. 하지만 그 칼끝이 향하는 타깃과 제도의 철학도 한국과 차이가 있습니다. 나스닥의 핀셋 규제는 저시총 주식을 먹잇감 삼아 횡행하는 '펌프 앤 덤프(시세조종)' 등 자본시장 교란 행위와 중대 범죄를 원천 타격하기 위한 무관용 원칙입니다.
 
반면, 한국의 강화된 기준은 시장의 구조적 결함을 외면한 채 일괄 적용된다는 것이 치명적 맹점으로 꼽힙니다. 현재 국내 증시는 밸류업 기조 속 반도체 등 극소수 대형주로의 수급 블랙홀 현상이 굳어져 있습니다. 펀더멘털이나 도덕성에 문제가 없음에도 코스닥 전반의 극심한 수급 가뭄 탓에 억울하게 주가가 짓눌린 우량 R&D 벤처들마저 '잠재적 탈세범' 내지 '부실기업'으로 취급되는 형편입니다.
 
'코스닥 자생력'을 위한 구조적 처방 절실
 
물론, 일본처럼 유예기간을 길게 주고 퇴출 기준 적용을 늦춘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통계는 시간적 여유만으로는 코스닥을 구하기에 역부족임을 방증합니다. 일본의 넉넉한 예외 조치와 다층적 퇴로에도 불구하고, 상장 유지 기준이 깐깐해진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고 있습니다. 신흥 기업들의 활력을 보여주는 '도쿄증권거래소 그로스 시장 250 지수(TSE Growth Market 250 Index)'의 추이를 보면 충격이 드러납니다. 2021년 9월1일 기준 해당 지수의 5개월 이동평균선은 1141.17, 25개월 이동평균선은 1037.32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2026년 8월3일 현재, 5개월 이동평균선은 733.05, 25개월 이동평균선은 703.68까지 추락한 상태입니다. 퇴로와 시간을 열어준 일본조차 중소형 성장주 시장의 펀더멘털을 유지하는 데 성장통을 겪고 있습니다.
 
코스닥 시장의 본질적인 자생력을 복원하려면 한 차원 높은 구조적 처방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통계가 시사합니다. 전문가들은 유망 혁신 기업이 단기 변동성에 휘둘리지 않도록 인내하는 장기 모험자본이 코스닥으로 유입될 수 있게 세제 혜택과 수급 정상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코넥스 시장의 인프라 정비를 통해 코스닥 퇴출 기업이 패자부활전을 치를 수 있는 하위 리그를 구축해야 한다”며 “아울러 단기 실적이나 시가총액 중심의 심사에서 벗어나, 기업의 R&D 투자 진행 상황과 기술 임상 가치를 감안한 '벤처 특화형 유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동전주 퇴출 등 자본시장 건전성을 높이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대형주 쏠림으로 중소형주 자금 조달이 위축된 상황에서 시행 시기를 1년 앞당긴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미국과 일본처럼 충분한 유예기간을 부여하거나 하위 시장으로 이전할 수 있는 단계적 완충 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기업들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며 “획일적인 시총·주가 기준보다는 R&D 투자와 기술 경쟁력, 성장 가능성을 종합 평가해 혁신 기업이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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