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민심은 차갑다. 근래 지지율 하락의 주된 배경에는 부동산 과세 저항과 주식 시장 부진이 있다. 부동산 투기는 단호히 배척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의 세제 양보는 실망스럽다. 실거주와 비거주 1주택자를 동일하게 과세하려는 타협안이 논의되고 있다. 비거주 1주택자의 피치 못할 사정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핑계로 조세 형평성과 정의를 허무는 것은 패착이다. 그런다고 부동산 과세에 반대하는 여론이 돌아설까. 부동산 규제에 찬성하는 여론마저 등 돌리게 한다. 세금 탓에 불평하는 국민과 투기를 잡으라는 여론 사이에서 어설픈 양보는 양쪽의 불만만 키운다. 지지율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돌파구는 주식 시장에 있다. 주가 부양 정책은 반대 여론의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 삼성전자의 대규모 주주환원에도 주가는 내려갔다. 일부 전문가는 금산분리 규제 탓에 자사주 소각 등 환원책을 마음껏 펴지 못하는 한계와 그에 따른 시장의 실망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식 가치에 대한 짙은 불신이다. PBR(주가순자산비율) 3~6배 수준의 현 주가가 과연 적정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주가 급등기에는 가려졌던 문제다. 전 고점에 비해 반토막 수준으로 주가가 떨어졌어도, 여전히 싸다는 인식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SK하이닉스의 주가가 300만원까지 치솟았다가 절반쯤 폭락했고, 지금은 박스권 형세다. 개인투자자들은 알려지지 않은 물밑 악재를 의심했다. 결과적으로 자회사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 검토라는 악재가 드러났다. 시장에선 현지 정보 접근성이 뛰어난 외국인들이 이를 미리 알고 선행 매도한 것이란 합리적 의심이 퍼졌다. 쪼개기 상장에 이어 정보 비대칭이라는 또 다른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 불신을 낳은 셈이다.
냉정히 돌아보자. 과거 코스피 6000선 돌파 이후 수직 상승을 이끈 주체는 소위 ‘동학개미’들이었다. 이들은 미국 마이크론만큼 저평가가 해소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외국인은 줄곧 주식을 팔며 냉정했다. 한국 기업의 점유율이 마이크론보다 높더라도, 고질적인 디스카운트 요인들을 고려하면 고평가됐다고 그들은 판단한 것이다. 주가가 반토막 난 박스권에서도 외국인은 매도 우위다. 외국인이 파는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됐다고 할 수 없다. 디스카운트가 여전하므로 마이크론에 비해 싸다는 인식이 없고, 현 주가가 바닥이란 신뢰감도 없는 것이다. 기대감에 몰렸던 개미들 다수는 실망감에 빠져나갔고, 서학개미가 다시 늘어났다. 외국인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냉랭하다.
그나마 코스피 5000선은 방어되고 있다. 주식에 대한 국민 접근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반도체주에서 빠져나온 수급이 순환매를 돌며 증시를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개인이 지수를 지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외국인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인정해 국장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대통령 핵심 공약인 5000선마저 무너질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고충이 많을 것 같다. 5000선을 넘어 지나치게 폭등한 지수로 인한 양극화 고민을 직접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5000선 공든탑도 위태로운 조짐이다.
박상인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의 저서 ‘코스피 5000 시대를 위한 기업 밸류업’에 따르면 한국의 재벌 기업집단 구조는 대주주의 이익과 소수주주의 이익이 상충되는 디스카운트 요인을 필연적으로 가진다. 기업 소유구조가 한국과 유사했던 이스라엘은 소수주주 동의제(MoM)를 도입하는 등 보완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추구해 개혁 성과를 봤다. 한국도 그러한 시도를 통해 디스카운트 해소가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에 지수가 폭등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다 집권 여당의 더딘 입법 성과에 실망했고 대통령 지지율 하락 등이 맞물려 기대감이 사그라지면서 지수도 된서리를 맞았다.
지수를 지탱하는 개미들의 기대에 정부가 부응하는 건 국가의 운명과 결부돼 있다. 부동산 투기를 꺼뜨리고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청년들에게 연애와 결혼, 양육할 의욕을 북돋는 것은 증시로의 머니무브와 국가 균형발전 등이 결합한 정책으로서만 가능하다. 대통령이 강조한 정책 방향성은 국가를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자처한 정권의 지지율이 무너지면 국운도 달라진다. 지지율 하락은 정책 동력의 상실을 뜻한다.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는 한, 외국인은 물론 누구도 코스피 5000선을 안전하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그간 당정은 자사주 의무 소각과 자회사 중복 상장 금지를 내세웠지만, 거듭 예외를 허용하며 선명성을 잃었다. 호남권 투자 등 내수 진작을 약속한 대기업 총수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힘들어진 사정도 있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예외가 반복되면 시장의 불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전당대회를 거쳐 새로 출범한 민주당이 전과 다른 모습으로 정부에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 정권이 아닌 국가가 살기 위해 그래야 한다.
주가 하락을 이유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현상은 안타깝다. 국민의 굳건한 지지가 있어야 대통령도 흔들림 없이 공약을 이행하고 강력한 증시 부양책을 펼 수 있다. 지지율 하락은 주가 회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장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여론의 전략적이고 성숙한 지지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재영 자본시장정책부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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