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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임선혜 "전통음악 알아야 세계 무대서도 통해"
제9회 대관령국제음악제 '아티스트와의 대화: 임선혜'
2012-07-29 14:52:17 2012-07-29 14:52:55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세계적인 거장들과 작업하며 유럽 무대를 누비는 소프라노 임선혜(36)와 한국관객들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28일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일환으로 평창 알펜시아 오디토리움에서 진행된 '아티스트와의 대화'에서 만난 임선혜씨는 체구는 작지만 다부진 모습이었다. "날도 덥고 휴가로 여기 오신 분은 할 일들이 많을텐데 이 자리에 누가 오실까 걱정했다"는 임선혜씨는 특유의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으로 그간의 유럽무대 활동에 대한 소회를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클래식 전문매장 '풍월당' 대표 박종호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 자리에서는 전날 공연한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고향인 강원도 철원에서 오는 30일 열릴 공연에 대한 소개, 그리고 유럽 무대를 누비면서 느낀 점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다음은 임선혜씨가 사회자 및 관객과 주고 받은 일문일답.
 
- 어제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공연했는데 소감은?
 
▲ 대관령 뮤직텐트가 지어진 후 첫 공연이었다. <천지창조>와 의미가 맞아 떨어져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다. 마치 봉헌식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오라토리오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워서 문을 열어놨더니 바람이 들어오면서 입을 마르게 하더라. 공기는 좋았지만 그 만큼 애로사항이 있었다.
 
- 임선혜씨는 노래도 노래지만 연기도 참 잘한다. 임선혜씨의 무대를 보면 최근 오페라의 경향이 어떻게 나아가는 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소화하고 있다.
 
▲ 어렸을 때부터 연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 부모님 몰래 거울 보고 연습하곤 했다. 길거리 다니면서도 연습하는게 취미다. 처음에는 괄시도 많이 받았다. 오디션에 합격했는데 내 연기도 노래도 들어본 적 없는 연출가가 이름만 보고 동양사람은 연기를 너무 못해서 같이 하기 싫다고 했던 적도 있다. 시간이 흘렀고 지금은 연출가들이 좋아한다. 워낙에 내게 아무런 기대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잘한다는 얘기도 듣는 것 같다(웃음).
 
- 지금은 연출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프라노 중 하나다. 유럽 메이저 극장의 실황공연을 담은 DVD를 보면 임선혜씨가 자주 나온다. 안무가 피나 바우쉬 공연의 경우 안무가가 워낙에 영상기록을 싫어해서 실황 DVD가 하나밖에 없는데 거기서 아모르 역을 임선혜씨가 맡기도 했다.
 
▲ 피나 바우쉬의 공연은 30~40년 전 작품을 지금 봐도 굉장히 현대적이다.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라는 작품을 피나 바우쉬가 안무했고 거기에 출연했다. 그 작품에서는 성악가들과 무용수들이 무대에 함께 나온다. 우리 성악가들은 춤을 못추니까 아주 단순하게 걸으면서 무용수를 따라간다. 아모르라는 역할은 비중이 작긴 하지만 에우리디체와 오르페오가 만나도록 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무대가 갑자기 밝아지면서 아모르가 등장했는데 그때 나와 함께 나온 무용수가 너무 예뻤다. 음악 때문에 춤이 살고 춤 때문에 음악이 살았던 것 같다.
  
- 바로크 오페라에서 스페셜리스트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처음부터 바로크 가수로 분류되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데뷔하게 됐나?
 
▲ 한국에서 대학까지 다니면서 여러 콩쿨에서 우승했었는데 그때 불렀던 곡들은 '광란의 아리아', '몽유병의 여인' 같은 곡들이었다. 그러다가 독일로 갔는데 첫 학기에 희한한 경험을 했다. 독일의 경우 교회나 성당 건물 중 멋진 것들이 많지만 막상 예배를 드리러가면 텅텅 비어 있다. 그런데 수난절기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마태수난곡,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듣기 위해 온 사람들로 성당이나 교회가 꽉 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람들에게는 기독교가 종교라기보다 예술과 함께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더라. 우리나라와 같이 타오르는 신앙을 볼 수 없다. 타오르는 신앙은 쿨하지 않고, 패션에 밀리는 것이고 그들은 생각한다. 부활절 전 사순이나 수난 시기에 한번쯤 바흐 수난곡을 듣거나 크리스마스에 가족끼리 메시아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들으면서 성탄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성당이나 교회 행사에 몇번 참여하는 것보다 더 정화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그런 문화에 대해 처음 알고 첫 학기에 바흐와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종교곡들을 전부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했기 때문에 두번째 학기가 시작된 후 바로 매니저에게 발탁돼 노래를 할 수 있었다.
 
- 처음에 지휘자 필립 헤레베헤에게 발탁된 이후 르네 야콥스같은 고음악계 거장들과 작업하고 있다. 자세한 얘기 부탁한다.
 
▲ 처음 데뷔했던 지휘자가 필립 헤레베헤라고 고음악에서 유명한 분이다. 원래 철학과 의학이 전공인데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자기 나름대로 음악에 대한 이미지가 확고하다. 그분 친구가 르네 야콥스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보이소프라노로 활동하고 합창단 만들어서 노래하고 다녔는데 둘다 거장이 됐다. 필립 헤레베헤는 콘서트 쪽에서 유명한 사람이고 르네 야콥스는 오페라 쪽에서 유명하다.
 
고음악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고음악은 지나친 기교를 지양하고 바흐나 헨델, 모차르트가 살았던 그 시대의 음악으로 돌아가자는, 일종의 운동이다. 마치 기름기 뺀 웰빙 음식같다고 볼 수 있다. 고음악은 지금 서양에서는 유행의 최고 정점에 있다. 바흐, 헨델, 하이든의 음악같은 경우 옛날 식으로 하지 않는 경우가 없을 정도다. 나의 경우 성량이 바그너 가수를 할 정도로 크지 않다. 권투로 치면 경량, 중량, 헤비급 중 경량급에 해당하는 가수기 때문에 고음악은 나와 딱 맞다.
 
- 고음악을 한 지 13년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베르니같은 오페라 섭외가 들어온다면 어떨 것 같나?
 
▲ 해 보고 싶다. 그런데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질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까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 사람은 고음악하는 사람인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 이전과 이후는 성악적인 테크닉의 차이라기보다 음악적 스타일이 달라진다. 음악적 스타일이 다른 것이란 점을 알고 있으면 괜찮을텐데 선입견이 있다. 내가 자주 하는 노래 중 '제비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네'라는 델라쿠아의 노래가 있다. 이건 19세기 말에 지어진, 굉장히 현대적인 노래다. 상처 받을까봐 댓글을 잘 보진 않지만 가끔 보면 '고음악 하지 말고 이런 노래 하세요'라는 사람과 '고음악이나 하세요'라고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다. 누구 말이 맞는 지 잘 모르겠다. 내 소리는 스스로 잘 모르기 때문에 스승들의 의견을 잘 듣는 편이다. 선생님들이 너랑 어울린다 하라고 하시면 용기가 날 것 같다.
 
- 강원도 철원이 고향이다.
 
▲ 철원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일학년까지 마쳤다. 철원에서 내일 모레 난생 처음 공연을 한다. 그곳에서 공연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곳을 너무 일찍 떠났기 때문에 제 고향이라기보다 아버지 고향이라는 느낌이 크다.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묻혀 계신 곳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뵈러 가는 곳이지 꿈에도 거기서 공연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참여하게 되면서 고향인 강원도에서 한번 공연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린 시절 작은 성당에서 '루돌프사슴코'를 불렀는데 그걸 보셨던 분들 앞에서 공연하게 되는 것이다.
 
- 임선혜씨는 일반적인 다른 음악가와 다르게 세상에 대한 관심이 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나눔 콘서트를 진행했고, 그 전에는 부모님이 병으로 일찍 죽은 아이들을 위해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북한 아이들을 위한 기금마련 콘서트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인 소망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 글쎄, 이건 개인적인 일이니까 어떤게 옳다 그르다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예술가도 하나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듣기 껄끄러운 말은 '재능기부'라는 말이다. 좋은 말이긴 한데 재능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내어놓을 때 할 수 있는 말이지 '재능기부하세요'라고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재능으로 먹고 살고 있는 사람에게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이야기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성당에서 만나셨는데 '빈첸시오회'라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옷가지를 나눠주고 독거노인에게 반찬을 해드리는 활동을 하는 모임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다녔었다. 그 중 한 집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주 어두컴컴한 곳에 할머니 혼자 사셨는데 뼈만 남다시피 한 상태였다. 동화책에서 본 마귀할머니와 닮아 가기 싫었는데 동생과 함께 억지로 끌려다녔다. 굉장히 어렸을 때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사회적 명예가 생기면 그런 일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던 것 같다. 그런 일 할 수 있다면 지금부터 좀 유명해지고 싶다(웃음).
  
- 국제 콩쿨에서 한국 음악가들의 위상이 커졌는데 실제로 정통 오페라 하우스에서 활동 중인 음악가들은 체감상 별로 없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고 이런 차별이 언제쯤 해결될 것으로 보는지 궁금하다.
 
▲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 독일 극장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배들을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3~4년 전만 해도 한국 사람이 무대에 서기 어려웠다. 독일 극장을 예로 든 것은 도시마다 극장이 있고 그곳에 소속돼 정식단원으로 월급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이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독일 극장 중 한 극장도 솔리스트건 합창단이건 한국 사람 없는 곳이 없다. 
 
우리나라 성악가의 경우 유수 콩쿨에서 우승을 하는데 그 사람들 이름이 끝까지 남겨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한국 사람은 콩쿨에 굉장히 강하다. 어렸을 때부터 경쟁하는 것에 익숙해 있고, 경쟁하면 이긴다. 그런데 콩쿨 우승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아무도 안 가르쳐 줬기 때문에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다. 그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 만큼의 세대가 아직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15년이 흘렀기 때문에 다섯 명에서 지금 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만큼의 시간이 흐르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콩쿨 이후의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게 선배로서 사명이자 책임이라 생각한다.
 
다만 외국사람들의 선입견 말고도 우리가 타지에서 겪어야 하는 음악 외 어려움들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할 것같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것은 결국 남의 나라 음악이라는 결론으로 돌아온다. 점점 절실히 깨닫는 게, 우리가 우리 문화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문화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 전통음악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이 너무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자기 나라 음악이 없으면 가수가 크기 힘들다. 예를 들면 한 프랑스 친구는 처음에는 나보다 못했지만 그 친구를 띄워줄 수 있는 여러가지 구실들이 있었다. 프랑스의 예술가곡, 오페라를 그 친구에게 다 밀어줘서 솔로 CD를 녹음하거나 하는 일들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 사람 유명하구나'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나를 키우려면 한국가곡을 녹음시켜 줘야 하는데 '한국에 예술가곡이 있어?'라고 물어본다. 또 '녹음해봤자 누가 들어?' 이런 얘기도 나온다. 한국 작곡가 중에 윤이상 선생님, 그리고 지금은 진웅 선생님이 계시지만 현대음악이기 때문에 대중적인 음악과는 또 다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주 잘나가는 용병'이라는 생각이 가끔은 든다. 굉장히 서글퍼질 때 드는 생각이다. 우리 전통음악을 잘 알아야 하고 그래서 그게 많이 알려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인들이 가부끼 음악이나 경극을 다 알듯이 우리 전통음악도 그렇게 돼야 한다. 유학을 올 때는 그냥 단순히 콩쿨 우승이라는 목표나 극장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희망만 가지고 올 게 아니라 이런 것까지 미리 생각하고 각오해야 한다. 이 문제 얘기만 나오면 굉장히 진지해진다.
  
- 마지막 질문이다. 예술적 영감을 음악 외에는 주로 어디서 얻나?
 
▲ 다른 예술에서 얻는다. 책을 두세권 정도 트렁크에 넣고 다닌다. 내 직업은 창조하는 직업이 아니라 창조된 것을 해석하는 직업이다. 난 굉장히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다. 대신 몇 가지를 주면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해낼 수가 있다. 작가들의 글을 읽을 때 '어떻게 이런 구성을 만들고, 이런 말을 하지'하고 생각하는 것이 재밌다. 미술관에 가는 것도 좋아한다. 공연 당일에는 말을 많이 하면 안되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독일의 스승이 제안해 준 방법인데, 아침을 늦게 먹고 한두시간 미술관 가서 걷다가 점심 먹고 들어오면 잠이 온다. 그러고나서 악보를 읽고 나가면 공연시간에 딱 맞출 수 있다.
 
사실 영감을 가장 많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람이다. 나는 사람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인물을 재창조, 해석하는 직업이다 보니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다. 새로우면서도 인간적인 '진짜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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