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토마토칼럼)'사막의 꽃'에 바쳐진 비운의 판결
2017-12-22 06:00:00 2017-12-22 06:00:00
지난 12월5일 대법원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 선고됐다. 14세 라이베리아 여성에 대한 난민신청 기각 사건을 다투는 소송이었다. 내용이 조금 복잡하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돈조 마케시 마투마라는 라이베리아 여성이 모국에서 ‘여성 할례(Female genital mutilation)’를 강요하는 집단 가입을 거부했다가 살해 위협을 당한다. 이를 피해 탈출한 그는 가나 난민캠프에서 딸을 낳고 한국으로 들어온다. 모국으로 송환당할 위기에 놓인 그는 딸만이라도 난민으로 인정해줄 것을 한국 정부에 신청하지만 거절당하자 소송을 낸다.
 
한국정부의 난민 인정신청 거부사유는 돈조 마케시 마투마씨와 그 딸이 라이베리아로 되돌아 갈 경우 보복을 당해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지만, 이는 범죄에 의한 것이지 ‘인종이나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 때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1, 2심도 한국 정부의 주장을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여기에 라이베리아가 최근 여성 할례 배척 정책을 펴고 있다는 이유를 더했다.
 
이 사건의 주심인 박보영 대법관은 1, 2심이 전혀 살피지 않은 쟁점을 끄집어냈다. 비극의 씨앗인 ‘여성 할례’에 대한 판단이다. 박 대법관은 “의료 목적이 아닌 전통적?문화적?종교적 이유에서 여성 생식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거하거나 여성 생식기에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여성 할례를 정의했다. 또 “이는 여성의 신체에 대해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박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할례’를 난민 인정 요건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난민 인정에 관한 한 상당히 보수적인 국가로 분류된다. 특히 다른 나라의 종교나 문화, 풍속에서 비롯되는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법무부가 발표한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 신청자 총 7542명 중 난민 지위가 인정된 사람은 98명뿐이었다. 올해 기준으로 전 세계 평균 난민 인정율이 38%로, 40%에 육박하고 있는 현실 비춰보면 심각한 수준이다.
 
여성 할례는 종교적·문화적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져 있으나 분명한 인권 침해며 야만적 폭력이다. 특히 대부분 은밀히, 그리고 비위생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얼마나 참혹한지는 소말리아 출신 유명 모델 와리스 디리가 쓴 자서전 '사막의 꽃'을 통해서나마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물적이고 비인간적인 의식은 종교 또는 민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 받으며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프리카와 중동의 28개국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수단에서는 전체 여성의 85%, 이집트는 60%, 소말리아 99%, 에디오피아 98%, 지부티 98%, 나이지리아에서는 60% 이상의 여성들이 할례를 받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 할례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남의 일’이고 ‘여성의 일’이기 때문이며, ‘여성 할례’ 피해자를 난민으로 선언하는 것과 자국의 이익을 견주어 볼 때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계산에 맞기 때문이리라.
 
우리 대법원에서 늦게나마 여성 할례를 난민 인정 요건으로 인정한 것은 매우 반길 일이다. 더욱이 임기 만료를 한 달 남긴 박 대법관이 아슬아슬하게 ‘여성 할례’ 난민들의 손을 잡아줬다는 사실은 얼마나 극적인가.
 
때문에 이 판결이 나온 후 이렇다 할 환영 성명은 물론, 이것이 첫 판결이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다. 그러나 접어두기로 한다. 다만 ‘사막의 꽃’이 바람을 타고 사막을 벗어나 다시 피듯이 이 비운의 판결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난민에 대한 인식이 환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기철 사회부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