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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반기업정서'와 '옥석 가리기'
2018-03-06 08:00:00 2018-03-06 18:10:33
한 중소기업이 뜻하지 않은 거래사고로 부도가 나고 말았다. 사장은 회사를 정리하고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몇 달 후 밝은 얼굴로 나타난 그는 걱정 근심이 없고 잠도 편히 잔다면서 그간의 소감을 말했다. “월급 받는 게 이리 편하고 좋은지 몰랐다. 사장님이 직원들 월급 못 줄까봐 노심초사하는 게 과거 내 모습 같아 안쓰럽다”며 “왜 기업가를 애국자라고 하는지 이제 알게 되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기업가가 여러 사람의 일자리를 짊어지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그럼에도 세간에는 ‘반기업정서(反企業情緖)’라는 말이 오르내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막연하게 사용하는 이 말을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반기업정서’는 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한국사회에서 ‘반기업정서’는 모든 기업에 대한 반감으로 싸잡아 묘사되므로 기업인들이 매우 싫어하는 말이다. 열심히 기업해서 세금내고 고용하는데 이런 분위기가 생겨난 것을 의아해하며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는 기업가들도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 350만 사업체가 있는데 설마 국민들이 이들 모두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반기업정서는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부분 일부의 ‘대기업’이나 ‘재벌’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한국경제연구원(2015년)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의 전체기업에 대한 호감비율은 37.8%인 반면 재벌에 대해서는 24.6%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2017년)의 기업호감지수(CFI)조사결과 전체기업에 대한 호감도(50점을 넘으면 긍정)는 55.8점으로 전년보다 8점이 높아졌다. 중소기업은 59.4점이나 대기업은 52.2점이었다. 2010년 기업호감도가 54점을 기록하며 최고치를 달성했다며 주요뉴스가 된 적이 있다. 기업이 경제위기의 극복에 기여하고 윤리경영을 실천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기업호감도가 긍정적 수준인데 전체기업에 대해 ‘반기업정서’라는 말을 하는 게 과연 옳은가? ‘반기업정서’에서의 ‘기업’은 어떤 기업인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국민의 81.9%가 반기업정서의 원인이 편법·불법과 정경유착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반기업정서를 무조건적·포괄적 범주에서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전체기업이 아닌 ‘편법·불법을 일삼거나 부정부패한 기업’에서 비롯된다고 봐야 한다. 최근 불거진 한국GM의 문제를 보더라도 온갖 편법과 경영부실, 고임금, 책임전가, 특혜요구 등의 모습으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해관계자들이 챙길 것은 다 챙기고 껍데기만 남은 기업으로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를 시험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이런 기업이 한둘이었는가? 국민세금 수조원을 쏟아 붇는 것에 분노하는 국민에게 호감을 보이라고 할 것인가? 사회적으로 폐해를 끼치는 이런 사례가 바로 국민의 반기업정서를 키우는 것이다.
 
다행히도 최근 창업분위기에 힘입어 기업가에 대한 인식과 위상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모범적인 기업인을 존경하고 우대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우리기업 대다수가 성실하게 고용과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사회공헌과 국가사회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기업이 어려운 경영환경을 헤쳐 나가며 윤리경영과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도 대견한 일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살려나가려면 기업의 명예와 사회적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기업은 ‘옥석가리기’로 가려내는 등 기업생태계의 건전화가 필요하다. 정부나 금융당국도 문제기업에 대해 철저한 사전적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 부정부패한 기업을 방치하거나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 또는 옹호하는 행위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창조적 파괴'라는 말이 있다. 슘페터가 기술혁신을 통해 인용한 이 말은 원래 독일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가 저서 <전쟁과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부는 끊임없이 기존의 부의 평가절하로 만들어진다는 의미로 만들었다. 최선을 다했으나 경영위기에 처한 기업은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악의적·탐욕적으로 사회적 희생을 야기하는 ‘반 기업적 기업’은 정리되어야 한다. 이것이 창조적 파괴이자 반기업정서를 없애는 방법이다. 우리사회는 선량한 대다수 기업에 일부의 ‘덩치 큰 불량기업’을 슬쩍 반기업정서라는 틀에 섞어 놓음으로써 ‘옥석의 혼재’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기업에 대한 ‘반기업정서’는 없다. 단지 편법·불법과 정경유착을 일삼는 일탈·부실기업에 대한 ‘비 호감기업 정서’만 있을 뿐이다.
 
이의준 벤처기업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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