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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피의자 구속이 정치적 타협 대상인가
2018-03-15 06:00:00 2018-03-18 13:51:29
이렇게 비극적인 국민이 또 있을까. 지난 14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100억원대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헌정 사상 다섯 번 째 전직 대통령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한 사람을 뺀 나머지 4명은 모두 국민 스스로 뽑았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적폐청산과 함께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정부가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이것이 과연 개혁인가, 감정풀이나 정치적 보복이라는…”라고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 1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최측근들이 구속되자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라며 한층 수위를 높였다. 또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정부 청와대와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국민들은 검찰 수사를)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적폐청산 과제로서의 자신에 대한 수사를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적 보복으로 폄훼했다.
 
이날 검찰에 불려나온 이 전 대통령은 포토라인에 서서 준비해 온 원고를 낭독했다.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시작한 그의 대국민 메시지에서 ‘정치적’이라거나 ‘보복’, ‘목표’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 자리를 ‘민생경제’, ‘한반도’, ‘국민’, ‘죄송’ 등의 말이 대신했다. 그러나 말미에서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만은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표면상으로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행간을 뜯어보면 그 참 뜻은, ‘내가 다 안고 갈 테니 정치적 보복은 더 이상 하지 말라’는, 즉 '정치보복의 피해자 코스프레'로 보인다. 잠시나마 이 전 대통령에게 참회와 반성을 기대한 국민의 여망은 그의 말대로 ‘참담하게’ 깨졌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신문에서도 적극적으로 자기 주장을 펴며 혐의 전반을 부인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가 끝나고 구속영장 청구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민여론이나 법조계, 검찰 내부에서도 구속영장 청구가 정당하다는 의견이 많다. 반면, 증거인멸의 우려나 도주 염려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청구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다.
 
여기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전직 대통령을 2명이나 구속하는 것이 정치적 부담”이라느니 “5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10년 전 일을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느니 하는 주장들이다.
 
안 될 말이다. 과거 일을 법적으로 문제 삼는 것이 부당하다면 공소시효제도는 왜 존재하는가. ‘전두환·노태우 사건’ 때 전직 대통령 2명을 한꺼번에 구속수감한 예도 이미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법 집행과 적폐청산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 죄질이 중한 범죄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발부 문제는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해야 할 뿐이다. 정치적 고려는 정치에서나 하고, 법집행은 헌법이 마련한 기관이 그 권한과 의무대로 해야 할 일이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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