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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소비 패러다임 전환할 때
2018-05-08 06:00:00 2018-05-08 06:00:00
많은 사람들이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라고도 부른다. 소비재와 서비스를 이용해 인간의 소비욕망을 자극하는 것을 말하며 20세기 중반 이후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 기업은 마케팅과 광고를 이용해 고객들이 필요 이상의 물건을 사도록 부추긴다. 이에 따라 상품의 수명은 짧아지고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한다.
 
소비사회의 개념은 보통 환경과 사회경제적 관계를 파괴하는 순간적 쾌락과 유행을 중시하는 물질주의, 개인주의, 시장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모델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인들이 마셜플랜과 함께 패전국 재건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생활 스타일인 ‘미국식 생활양식(American Way of Life)’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널리 퍼졌다. 미국인들은 1920년대부터 넓은 공간에 대형 슈퍼마켓을 세우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 가정용 청소용품, 식료품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영광의 30년(1946-1975)’이라고 불리는 기간에 소비사회가 출현했다. 이 새로운 상업공간은 마케팅과 광고를 통해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수많은 쓰레기를 양산한다.
 
각국은 이러한 쓰레기들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임기 말인 2022년까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기로 했다. 에두아르 필리프 수상은 지난달 말 프랑스 북동부 지역 마이엔(Mayenne)에 있는 세브(SEB, 소형가정용품으로 유명한 회사) 공장을 방문해 2025년까지 플라스틱 100% 재활용을 위한 ‘낭비와의 투쟁’ 50가지 대책을 발표했다. 전방위적으로 소비시대를 마감하고 지구의 자원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가 세브공장을 찾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세브 그룹은 프랑스에서 최근 10년 간 그들이 생산한 제품의 93%를 재생하고 있다.
 
필리프 수상은 ‘쓰레기를 보다 더 생산적으로 재활용’하는 것과 ‘보다 덜 버리고 덜 소비하는’ 것을 독려하고 있다. 덜 버리기 위한 방법으로는 견고한 물건 구입하기, 덜 소비하기를 위해서는 행복한 절제 운동을 하고 있는 환경운동가·작가이자 바이오 농부인 피에르 라비(Pierre Rabhi)의 생활을 예로 들었다.
 
필리프 수상은 환경론자의 아이콘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실로 환경보호를 위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물건이 고장났을 경우 “고쳐 쓸 생각보다 새로운 제품을 사고, 아직 상태가 쓸 만함에도 불구하고 버린다”며 “사고 버리는 논리를 깨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녹색 에너지를 늘이기 위한 대체에너지법을 통해 65%의 쓰레기를 재활용할 것을 분명히 하고, 지금부터 2025년까지 50%의 쓰레기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37만5000톤의 플라스틱 병과 캔을 소비한다. 플라스틱 병은 프랑스 사람들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포장의 4분의 1을 차지하지만 60% 밖에 재활용되지 않는다. 캔도 마찬가지다. 반면 스칸디나비아 지역 노르딕 국가들은 이들 물품의 90%까지 재활용하고 있다. 필리프 수상이 발표한 재활용 경제 로드맵의 목적 중 하나는 쓰레기의 재활용율을 높이는 것이다. 현재 프랑스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의 재활용 비율은 39%이지만 독일은 65%에 달한다.
 
프랑스는 재활용과 별도로 지금부터 2030년까지 소비의 30%를 줄일 예정이다. 필리프 수상은 이 도전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재정적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재생 사업을 하는 업체의 부가가치세를 내리고 모든 오염 활동(매장, 소각)에 대해서는 세금을 가중시킬 방침이다. 재생산업 경쟁력도 강화할 예정이다. 이처럼 쓰레기 문제에 부딪쳐 해결 방안을 궁리하는 프랑스 정부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함과 동시에 소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려고 발 벗고 나섰다.
 
한국도 지난달 초 수도권에서 폐비닐 쓰레기 대란 소동이 일어났다. 환경부는 재활용 업체들과 협의해 쓰레기를 모두 정상수거하기로 긴급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쓰레기 문제는 수도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일순간의 긴급조치로 해결될 일은 더욱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은 세계 1위 수준(98.2kg)이며 하루에 버리는 종이컵은 약 7000만 개에 달한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쓰레기를 배출한다면 대한민국은 언젠가 쓰레기로 뒤덮이고 말 것이다.
 
정부는 쓰레기 문제를 업체와의 타협만으로 끝내지 말고 서둘러 장기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라. 아울러 소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도록 상품의 수명을 연장하고 국민의 생활 습관도 바꿀 수 있도록 계몽하고 독려하라. 이제 소비가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사고 버리고 또 사는 논리는 더 이상 안 된다. 마하트마 간디의 조언처럼 “남들이 심플하게 살 수 있도록 심플하게 살자(Live simply that others may simply live).”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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