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남북미 대화에 가려진 숙제들
2018-06-12 06:00:00 2018-06-12 06:00:00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세계인의 주목을 모은 6·12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에 대한 기대가 높다. 하지만 정상회담으로 국내에 산적한 각종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상회담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가 산적했다. 북미대화에서 내놓은 약속들이 실제 이행으로 이어지고 그 성과가 남북 교류협력에 반영되려면 고도의 정치·경제적 해법과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 한반도 평화협정의 이행은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중국도 관할권을 주장할 것이다. 북한과 중국 사이에 그리고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일거에 해결될 수 없는 숙제들이 순차적으로 풀려야만 한다. 미국과 중국은 우선의 난제인 북핵 문제를 풀더라도 서태평양과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패권과 무역마찰을 두고 밀당을 지속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무역상의 긴장은 남북 통치자들의 외교능력을 넘어 남북관계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의 어깨가 그만큼 무겁다.
 
외교와 국방에서 한시름 놓더라도 이번에는 경제문제가 밀물처럼 밀려들 것이다. 그간 정부는 ‘사람중심 지속성장 경제’라는 패러다임에 입각해 소득주도 성장과 일자리중심 경제, 공정경제, 혁신성장의 유기적 순환을 표방했다. 소득주도 성장 부문에서는 케인즈식의 유효수요 이론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공공부문 일자리창출을 추진했다. 정부의 이런 방침에 대항해 자유주의 시장경제주의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면서 투자주도형 성장 또는 수출주도형 수요주도 성장을 통해 자연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시장경제 일변도의 정책만으로는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게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자유주의 시장경제론이 신봉한 낙수효과는 조금씩 신기루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론경제학과 달리 현실 경제에서는 좌우가 공존하는 균형정책이 필요하다. 문재인정부가 추구하는 경제발전 패러다임에는 소득주도 성장과 공정경제와 같은 사회적 시장경제 요소도 있지만 혁신성장과 일자리중심 경제와 같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도 공존한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오히려 좌우의 균형과 중용을 잃게 된다. 정부는 사소한 이론공격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와 혁신성장을 중시하는 시장경제주의를 투트랙 삼아 적절히 번갈아 운용해야 할 것이다.
 
중단 없는 적폐청산도 경제발전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다. 적폐청산이란 엄청난 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를 척결하자는 것이 아니다. 범죄는 그동안에도 검찰이나 경찰이 나름 대응했다. 적폐란 일상거래에서 주고받았던 리베이트처럼 관행적으로 벌어졌던 일들이지만, 결코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말한다. 적폐의 청산을 모두 대통령에게 맡길 수는 없다. 담당 공무원들까지 나서 전심전력으로 사소한 비리들을 물리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리 빼고 저리 넘겨서는 적폐의 청산이 불가능하다. 사법으로 다스리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행정기관의 감독권을 발동하기에는 관할권이 불분명해 적폐가 청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문화체육관광부의 감독을 받는 어떤 단체의 내부비리를 둘러싼 갈등도 적폐청산 사례에 해당한다. 해당 단체 임원들의 횡령·배임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한 전직 임원이 이 문제를 검찰에 고발했더니 검찰은 경찰로 넘기고 경찰은 “확실한 증거를 가져오라”고 요구하면서 고발이 취하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 임원이 이번에는 문체부 감사관실에 혐의를 신고했더니 감사관실에서는 산하 비리신고센터로 내려보냈고, 이곳에서도 신고인을 불러 “확실한 증거가 있느냐, 없으면, 조사가 어렵다”며 돌려보냈다. 하는 수 없어 혐의사실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했더니 거기서는 공직유관단체의 내부 부패혐의는 관할사무가 아니라며 종결처분을 내렸다.
 
이런 사례는 행정지도 기능의 부재를 보여준다. 사회 여러 곳에 적폐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법치국가를 무색하게 만든다. 폭력정치를 방관하던 권위주의 시대도 아닌데, 사소한 적폐들에 눈을 감다 보면 보다 큰 적폐들에도 둔감하게 된다. 대통령의 국제정치적 감각과 남북대화를 위한 결단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내치가 정부와 여당의 인기를 견인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동력이 주춤할 경우에는 그간 쌓였던 민생문제들이 비집고 들어올 것이다. 균형경제와 적폐청산을 향한 중단 없는 노력이 뒷받침돼 민심이 조석으로 변하지 않기를 염원한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