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정부와 여당이 금융감독원과 새로 신설할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키로 하면서 금융감독 '독립성 훼손'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로부터 인사·예산 등을 통제받게 되는데, 이러한 입김은 감독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명분이 된 효율성과 독립성이 오히려 퇴보할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감독기관 인사·예산 통제 강화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이 17년 만에 공공기관 재지정을 앞둔 가운데 당국 안팎에서는 독립성 훼손·인력 이탈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앞서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은 재정경제부로, 금융감독 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로 분리·신설하는 내용의 금융당국 조직개편안을 확정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금융위로부터 감독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금감원은 금감원과 금소원으로 쪼개 두 조직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방침입니다. 현재 금감원은 '무자본 특수법인'입니다. 사실상 민간 조직이나 정부의 일을 하며 관리·감독을 받아 '반민반관' 조직으로 불립니다.
금감원은 정부 지원액 비율이 96%가 넘는 만큼 법률상 공공기관 지정 대상인 것은 맞습니다. 정부 지원액은 금감원이 피감기관으로부터 받는 감독 분담금입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르면 정부의 업무를 위탁받아 얻는 수입액이 전체의 2분의 1을 초과하는 기관은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금감원이 민간 조직 형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공공기관 전환 시 독립성 훼손이 우려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금감원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관치금융의 폐해를 막기 위한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에 따라 독립적인 기구로 설립됐습니다. 금감원은 2007년 노무현정부에서 한 차례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는데, 독립성 훼손 논란에 2년 뒤인 2009년 공공기관에서 해제됐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2008년 미국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계기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해 금융감독 업무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만 이후에도 공공기관 재지정을 둘러싼 논란은 이어졌습니다.
2017년 금융권을 비롯해 금감원에서 채용 비리가 발생,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정부 차원의 관리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2020년에는 라인자산운용과 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지며 시장 감독 기능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 했지만, 과거와 같이 '감독 독립성 훼손'을 이유로 유보했습니다. 그러면서 채용비리 근절, 공공기관 수준의 경영 공시, 엄격한 경영평가, 비효율적 조직 운영 문제 해소 등의 유보 조건을 달았는데요. 금감원도 '향후 5년 내 팀장 이상 보직을 받을 수 있는 3급 이상 상위직급 비율을 35%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금감원은 해당 유보 조건을 조기 달성한 상태입니다.
금감원이 17년 만에 공공기관으로 재지정될 예정인 가운데 당국 안팎에서는 독립성 훼손·내부 직원 이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모습. (사진=뉴시스)
"금융감독에 정부가 관여, 시대 흐름 역행"
금감원 공공기관 재지정 추진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정권 큰 논란이 됐던 '관치금융'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금융당국 조직개편으로 금융시장 감독기구는 재정부와 금감위, 금감원, 금소원 등 4개로 늘어납니다. 감독 업무의 경우 공공기관 지정에 따라 정부로부터 예산과 인사 등을 통제받을 경우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워질 것이란 걱정이 큰 상황입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유럽 등 선진국의 사례로 볼 때 금융감독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며 "금감원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정부 눈치를 보며 시장 감시에 나설 수 있고, 정책 필요성에 따라 관치금융이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금감원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기획재정부(조직개편 이후 재정경제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로부터 인건비와 예산 통제를 받게 되는데, 경영 전반에 대한 공운위의 심의·의결 등 의사결정이 불가피합니다. 기존에는 금융위 경영평가위원회가 금감원의 경영평가·예산을 심의·확정해 왔지만, 앞으로는 재경부 승인까지 받아야 합니다. 국회 차원에서도 기존 정무위원회에 더해 기획재정위원회의 감사를 동시에 받게 됩니다.
법률상으로는 경영평가에 따라 금감원장을 해임할 근거도 생깁니다. 공운위는 매년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통해 기관별 A·B·C·D등급을 매기고, 미흡한 기관장에게는 해임·경고 등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6월 공운위는 경영 실적 평가에서 2년 연속 '미흡(D등급)'을 받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을 해임 건의한 바 있습니다.
금융당국 체계 개편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조직개편 논의에 시동이 걸린 배경엔 금융위가 금감원의 상위 기구로 있는 현 체계가 감독 기능 약화로 이어져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직 개편이 금융감독 기능을 금융위에서 분리시켜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면서,금감원과 금소원을 모두 공공기관으로 지정해버리면 재경부의 입김이 더 세질 수밖에 없다"면서 "독립성은 후퇴하고 목적을 알 수 없는 개편이 돼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금감원 직원들은 정부의 공공기관 재지정과 금소원 분리 신설 방침에 반발해 집단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금감원 다른 직원은 "공공기관 지정으로 예산을 통제하면서 감독이나 검사 업무 전반을 통제하는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9일 금융감독원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직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로비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반대하는 손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 정부·여당이 전날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신설하고, 금감원과 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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