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디지털자산기본법(가상자산 2단계) 입법이 지연되는 가운데 금융당국 출신 인사들의 가상자산 관련 업계 재취업이 급증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법과 감독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과도기에 정책 방향과 검사 관행을 잘 아는 전관들이 업계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해상충 가능성을 제대로 걸러낼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융위·금감원 출신 영입 경쟁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법 제정이 늘어지는 사이 주요 가상자산거래소들은 금융당국 출신 인력을 적극적으로 영입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위와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4급 이상 금감원 퇴직자 16명이 두나무와 빗썸에 재취업했습니다. 두나무가 9명, 빗썸이 7명입니다.
2023년까지만 해도 단 한 명도 없었던 가상자산업계 재취업자가 2024년 5명, 지난해 8명으로 급증했습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과 2단계 입법 논의가 본격화된 시기와 금융당국 출신 인력의 거래소 이동 시기가 맞물린 셈입니다.
올 들어서는 공직자 재취업 심사가 강화되면서 가상자산업계로의 재취업은 소강상태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반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은 금감원 퇴직자 취업 사례 27건 가운데 24건이 승인 또는 취업 가능 결정을 받았는데요. 가상자산 분야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으로 옮겨 가는 사례가 늘었습니다.
가상자산업계로 금융당국 출신이 몰리는 것은 제도권 편입과 맞물려 있습니다. 지난해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된 데 이어 올해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가상자산산업 전체의 틀을 정하는 사실상의 업권법인데요. 거래소 인가와 지배구조, 가상자산 발행·유통, 스테이블코인 발행 등을 규율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입니다.
감독 수준이 기존 금융사에 가까워질수록 거래소 입장에서는 이상거래 감시와 이용자 자산 보호,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만큼 감독 경험을 가진 전문 인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가상자산처럼 제도 형성 초기에는 당국이 어떤 규제를 검토하고 있는지, 검사와 제재에 어떻게 대응하지는지 등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인력의 경쟁력이 높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거래소의 처우가 금융사에 비해 월등히 높고 향후 금융사 재취업으로 확장할 수 있기에 여전히 관심이 높은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가상자산 2단계(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이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 출신 인사들이 재취업에 혈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뉴시스)
제2 김용범 방지책 필요
금융위는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연내 제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하고 가상자산 발행·유통과 공시, 사업자 진입·영업행위, 거래소 지배구조 등을 포괄적으로 규율하겠다는 구상입니다.
하지만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 여야 간 또는 당정 간의 이견은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은행이 ‘50%+1주’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도록 할지, 비은행 금융사와 핀테크·기술기업의 독자적인 발행을 어디까지 허용할지를 놓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에 대한 지분율 제한도 쟁점입니다. 금융위는 대체거래소의 지분 규제를 참고해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의 보유 지분을 15~20%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반면 여야 의원들은 이미 시장이 형성된 뒤 지분을 강제로 낮추면 책임경영이 약화되고 외국 자본의 지분 인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며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제도 마련 전후 과정에서 금융당국 출신의 재취업 등이 이해상충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퇴직자가 취업 이후 어떤 업무를 맡는지, 감독당국을 상대로 한 검사·제재·인허가 대응에 관여하는지, 과거 재직 당시 확보한 정보와 네트워크가 활용되는지 사후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특히 금융당국 인사들이 가상자산업계에서 활동한 뒤 다시 정부의 정책 결정권자로 복귀하는 경우도 관리 사각지대로 꼽히고 있습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경우 금융위 사무처장과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낸 뒤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 산하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를 맡았고 이후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복귀했습니다.
김 실장은 해시드오픈리서치 재임 당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조속한 법제화와 민간 중심의 발행 구조를 주장했는데요. 현 정부가 디지털자산기본법에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을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국회에서는 김 실장의 과거 해시드 경력과 정책 영향력을 둘러싼 이해상충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금융위가 발주한 디지털자산 2단계 입법 연구용역 최종 보고서에는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이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실장이 금융위 입장 번복에 개입한 것인지 등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 실장 사례는 금융당국에서 업계로 이동하는 단계뿐만 아니라 업계에서 다시 정부로 복귀한 뒤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과정까지 이해상충 검증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취업 이후 업무 범위 제한과 위반 여부 점검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강남구 빗썸라운지 전광판에 비트코인 가격이 표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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