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한국형 국부펀드를 설립하고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규제 완화를 공식화하면서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재계에서는 숙원이었던 금산분리 규제가 풀리며 자금에 숨통이 트이고 신산업 분야 투자의 장벽이 허물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반면, 시민단체나 일부 전문가들은 경제 집중도와 위험을 키울 수 있는 특혜성 조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AI 시대, K-반도체 비전과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12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그동안 요구해왔던 금산분리 규제 완화와 관련해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요건 개선이 일부 수용된 것에 대해 반색하는 분위기입니다. 기업 한 관계자는 “반도체 업종에 대한 특례라는 부분이 있어서 좀 더 내용을 살펴봐야겠지만, 첨단전략산업이나 기업 규모별 규제를 재검토하겠다고 한 만큼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2026년 정부부처 주요 업무보고’에서 첨단산업 활성화를 위해 일반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의무 지분을 현행 100%에서 50% 이상으로 낮추고, 금융리스업을 필요한 최소한도로 허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원안은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반도체 업종’에 대한 특례 규정을 신설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당장 SK하이닉스를 손자회사로 둔 SK그룹이 규제 완화의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분율 행위 요건이 완화할 경우 다양한 밸류체인 지분투자나 합작법인(JV) 설립이 가능한데 발표대로면 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가 특수목적법인(SPC) 등 리스사를 만들고, SPC가 설비·시설을 지어 SK하이닉스에 대여할 수 있어섭니다.
이와 함께 기재부는 기업 성장을 저해하는 기업 규모별 규제를 발굴·개선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제도를 성장 촉진형으로 전환·추진할 계획입니다. 또 내년 상반기 중으로 싱가포르의 테마섹, 호주의 퓨처펀드 등을 모델로 삼은 ‘한국형 국부펀드’를 설립해 국가의 미래 성장 분야이거나 예상 수익률이 10~20% 수준으로 높은 프로젝트에 대해 투자할 계획입니다.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번 정부 정책을 놓고 의견이 갈립니다. 규제 완화가 산업의 투자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와 함께 배터리·자동차·에너지 등을 보유한 타 지주사들이 형평성을 이유로 완화를 요청할 경우 막을 명분이 적어 특혜가 전이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첨단산업 투자 활성화를) 산업정책의 방향으로 잡은 것으로 보이는데, 반도체만 첨단산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특정 산업에 대한 특례 요구가 반복될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반도체에서 시작한 특례가 이차전지, 자동차, 조선, 디스플레이 등 다른 첨단산업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현재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고 있는 SK그룹, LG그룹, GS그룹 등이 있는데 지주사들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GS칼텍스 산하에 합작법인 형태의 금융리스사를 차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또한 “AI 반도체 설비투자와 금산분리 완화를 연결하는 것은 맞지 않고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우량기업은) 내부 유보금이나 유상증자 등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세수 부족 상황에서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투자를 활성화하고 첨단산업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과거 인터넷뱅킹의 경우도 금융 환경이나 투자 환경이 변하면서 금산분리를 좀 완화해준 사례가 있다”며 “첨단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선 반도체뿐만 아니라 신산업으로 확대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도덕적 해이 등의 우려 요인에 대해선 안전장치 역할을 하도록 별도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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