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부과한 ‘상호관세’가 미 대법원으로부터 위법하다고 판단되면서, ‘관세 환급’ 여부가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납부한 막대한 상호관세가 법적 근거를 잃게 돼 이를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다만, 환급 절차가 복잡한 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장기간의 법적 공방을 예고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면서 단기간에 관세를 환급받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재계 역시 현지 사업 환경의 부정적인 영향 우려 등을 이유로 관세 환급 소송에 대해 ‘신중 모드’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철저한 준비를 통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23일 정부와 재계 등에 따르면 관세청은 국내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환급 방법 등을 안내하는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미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판결함에 따라 해당 관세 납부의 법적 근거가 사라진 데 따른 조치입니다.
통상 미국 관세당국(CBP)에 대한 관세 환급 청구 권한은 ‘수입신고자’(IOR)가 갖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 수출기업이 관세를 대신 납부하는 ‘관세지급인도조건’(DDP) 방식을 활용한 경우 직접 환급 신청이 가능합니다. 관세청은 지난해 관세 부과 대상 물품을 미국에 수출한 2만4000여개 기업 가운데 6000여곳이 DDP를 활용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관세를 환급 받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우선 DDP를 활용하지 않은 1만8000여곳의 기업은 관세 환급 직접 청구가 어렵다는 점은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미국에 현지법인을 두고 이를 수출에 활용하는 대기업의 경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 기업의 경우 미국 IOR 측과 자체 협의를 통해 환급 절차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관세청 관계자는 “DDP를 활용하지 않은 경우 환급 절차 안내가 어렵다”며 “현지 본·지사까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환급 절차 안내의 첫 번째 조건은 DDP 여부”라고 했습니다.
또한 한국 수출기업이 가격 인하 등을 통해서 사실상 관세를 부담했더라도, 세금을 미국 IOR이 냈다면 환급 청구가 어려울 가능성도 있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실제 수출기업들이 관세를 내지 않고 인상분만큼 가격을 인하해서 파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이는 관세를 부담했다 보기 어렵다고 법원이 판결할 수도 있다”며 “실질적인 관세 부담 여부 등을 한국 기업들이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환급 절차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쌓여 있는 수출용 컨테이너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여기에 미 연방대법원이 위법 판결을 내리면서 관세 환급 절차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에 CBP가 세부 환급 절차를 마련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세부 절차가 마련되기까지는 혼선이 불가피한 셈입니다. CBP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추가 기술 지침이 마련되는 대로 종합적으로 검토해 별도 공지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만일 CBP에 제출한 환급 요청이 기각될 경우 지난한 소송 과정을 거쳐야 하는 점도 변수입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장기간의 법정 공방을 예고한 만큼, 한국 기업으로서는 미국 정부와 소송전에 나서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위법 판결이 나온 지난 20일(현지시각) 관세 환급 문제와 관련해 “앞으로 수년간 소송에서 다투게 될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재계, 환급 ‘촉각’…이행 ‘주저’
재계 역시 지난해 관세로 인한 막대한 비용을 부담한 까닭에 환급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미국 현지 법인이 있는 재계의 경우 관세 환급 신청에는 큰 무리가 없지만, 당장 절차를 진행하거나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신중 모드’를 유지하는 모습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정책에 있어 강력한 입장을 연거푸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관세 환급 요청이 이슈가 될 경우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법적 분쟁이 현지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또 다른 외교·통상 마찰로 비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주저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재계 관계자는 “관세 환급 길이 열렸다고는 하지만, 환급 가능성을 그렇게 높게 보고 있지는 않다”면서 “또 트럼프 대통령이 또 다른 우회 관세를 예고한 상황에서 개별 기업이 나서서 대응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서울 도심 속 마천루.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관세 환급에 있어 타 기업 사례를 참고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강 교수는 “관세 환급 요구는 미 대법원의 위법 판단에 따른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지만 기업들이 수출에 타격을 입는다거나 압박이 좀 예상된다고 생각해 조금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퍼스트 무버’가 되면 불이익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법적인 준비는 미리 충실히 하되, 상황을 지켜보며 유럽연합(EU)이나 일본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도 “미국 내 마켓 파워가 있는 기업들은 환급 얘기를 하기가 좀 쉽겠지만, 대다수의 기업들이 절차를 떠나 분위기상 요구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타국 기업들이 움직이는 상황을 보면서 전략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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