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기계가 소의 아픔을 읽을 때
2026-07-16 06:00:00 2026-07-16 06:00:00
소는 아파도 내색하지 않는다. 성치 않은 티를 내면 포식자에게 먼저 잡아먹힌다. 피식자로 진화한 소의 오랜 습성이다. 농장에 들어와 운명은 바뀌었지만 습성은 남았다. 그래서 사람은 소의 통증을 자주 놓쳤고, 소의 아픔은 늘 실제보다 낮게 매겨졌다. 
 
이스라엘 텔하이대의 마르셀로 파이겔스타인(Marcelo Feighelstein) 교수 등 국제 연구팀이 최근 과학 전문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논문을 실었다. 거세 수술을 받은 황소 17마리의 수술 전후 얼굴 영상을 보여주고, 수의사와 인공지능 중 누가 통증을 더 잘 가려내는지 겨뤘다. 영상만 봤을 때 인공지능은 97% 정확도로 수의사를 앞섰다. 통증 없는 소를 통증으로 잘못 짚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수의사는 소를 직접 만져 행동까지 살핀 뒤에야 겨우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연구팀은 미묘한 변화를 잡아내는 기계로 동물복지 감시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 평가했다.
 
기계가 소의 아픔을 읽는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통증을 정확히 읽는 일과 소를 잘 대하는 일은 다르다. ‘정밀축산’(PLF), 흔히 ‘스마트축산’이라고도 불리는 흐름의 기저에는 사육 규모의 팽창과 인력 절감이 있다. 국내 최초로 ‘기가팜’을 구축한 충남 당진의 한 농장에서는 젖소 1000마리를 열댓 명이 돌본다. 기계가 24시간 소를 지켜보는 사이, 사람과 동물이 마주치는 자리는 줄어든다.
 
세상이 변했다. 많은 사람이 동물의 삶의 질 개선과 권리를 주장한다. 변화의 원동력은 어디서 왔을까? 역설적이게도 인간과 동물의 ‘만남’이었다. 동물원에서 텅 빈 눈으로 관람객을 바라보는 호랑이, 실험실에서 주사를 맞으며 찍찍거리는 쥐, 그리고 A4 용지 한 장 크기의 케이지에 갇힌 닭의 고통에 우리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만남이 없으면 공감도 없다.
 
도시가 커지고 공장식 축산이 들어서며 농장 동물이 일상에서 사라졌다. 현대인은 반려동물을 애착하고 동물원을 사랑할 뿐이다. 그래서 영국의 미디어 비평가 존 버거는 동물원을 ‘실패한 관계에 대한 묘비명’이라고 했다. 
 
인공지능은 또 무엇을 바꿀까. 기계 한 대가 지켜볼 수 있는 동물이 늘수록 농장은 커지고, 커진 농장에서 동물 한 마리 한 마리의 얼굴은 사라진다. 관리를 기계에 넘기면 사람은 물러나고 동물은 더 ‘물건화’된다. 옛날에 좋은 농부는 소의 신호를 읽었다. 기계가 그 일을 떠맡으면 사람의 눈썰미도 무뎌진다. 사람 볼 일이 없어진 동물은 사람을 더 두려워할지 모른다. 산업적으로는 큰 농장만 살아남을 것이다. 동물에 부착된 웨어러블 기기에서 측정되는 각종 생체 정보는 세계적 축산기업의 서버에 저장될 것이다. 동물의 본성대로 키우려는 동물복지 농가의 설 자리는 좁아질 것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충남 당진시 고대면 스마트축산단지를 찾아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사진=농림축산식품부 제공)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스마트축산은 처음부터 동물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인력비 감축, 생산성 증가, 가축 질병 및 악취 감소가 목적이었고, 동물복지는 생산성 증가에 딸린 부산물로만 다뤄졌다. 2020년 정밀축산을 주제로 농민, 산업계 종사자, 정책결정자 등이 모인 영국의 동물복지연구네트워크(AWRN) 워크숍에서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웨어러블 기기의 무게, 카메라가 24시간 감시하기 위한 축사 조명 시간의 증가, 근본적으로는 사육자와 동물의 만남의 소거…. ‘동물의 얼굴’ 없는 축산의 시대가 오는 것인가.
 
인공지능으로 농장도 전환점에 섰다. 기계가 동물의 고통을 읽는 시대가 열렸다면, 그 눈이 무엇을 위해 쓰이는지 물어야 한다. 시민사회와 정책결정자, 수의사와 과학자가 함께 지켜봐야 한다. 인공지능이 착취를 자동화하는 도구로, 복지를 가장한 겉치레로 전락하지 않도록. 기계는 소의 아픔을 읽을 것이다. 다만 그 아픔을 마주칠 사람은, 그 자리에 없을 것이다.
 
남종영 KAIST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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