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국을 인공지능(AI) 시대의 '승전국' 가운데 하나로 평가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AI 반도체 산업이 세계적인 호황을 누리며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우려되는 국가로도 지목했다. AI의 혜택은 이미 노동시장에 자리 잡은 경력직에게 집중되는 반면, 청년층의 첫 일자리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FT가 인용한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15~29세 청년 일자리는 21만1000개 감소한 반면, 50세 이상 일자리는 20만9000개 늘었다. 특히 AI 영향을 크게 받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시스템 통합·관리, 정보서비스 분야에서 청년 일자리 감소 폭이 두드러졌다. 미국에서도 소프트웨어 업계를 중심으로 경력직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 FT의 진단이다.
취재 현장에서 마주한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업들은 "사업 규모에 따라 채용은 유동적"이라거나 "필요한 인재는 계속 채용한다"고 설명한다. 실제 AI 투자 확대에 맞춰 채용을 늘린 기업도 있다. 하지만 여러 업종을 취재하며 공통적으로 확인한 변화는 신입 채용이 점점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IT서비스 업계가 대표적이다. 삼성SDS의 신규 채용은 2023년 3643명에서 지난해 2442명으로 33% 감소했다. LG CNS는 544명에서 407명으로 줄었다. 실적은 성장했지만 채용은 오히려 축소됐다. AI 전환(AX)을 추진하는 통신업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통신 3사의 채용 전략은 엇갈렸지만 선별 채용 기조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해 채용을 늘렸던 KT도 올해는 신규 채용 규모를 140여명 수준으로 조정할 계획이다.
현장에서는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면서 예전처럼 신입 사원을 교육해 업무를 맡기기보다 기존 인력이 AI를 활용해 더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코드 작성과 테스트, 문서 작성, 자료 조사처럼 과거 신입이 경험을 쌓던 반복 업무 상당수가 AI로 대체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AI가 사람을 대체하기에 앞서 사람을 키우는 과정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현장에서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대규모 실직이 아니라 신입 채용 축소와 인턴 감소, 주니어 업무의 자동화다. 기업은 경력직을 원하지만 모든 경력직도 결국 누군가에게 첫 기회를 받았던 신입이었다.
기업만 탓할 일은 아니다.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다만 생산성만을 기준으로 조직을 설계하다 보면 사람을 키우는 과정까지 사라질 수 있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기술 경쟁력만이 아니다. 누군가가 첫 번째 기회를 얻고 시행착오를 거쳐 성장할 수 있는 통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시작돼야 한다. AI가 줄이고 있는 것은 단순한 반복 업무가 아니라, 누군가의 첫 번째 기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지은 테크지식산업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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