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 67기 추모제…박찬대 "명예회복 완전치 않아"
초대 농림부장관 지내며 토지개혁 주도한 죽산
'평화통일' 주장한 진보당…이승만 정권서 '사법살인'
"죽산의 독립운동가 서훈 이뤄져야" 한 목소리
2026-07-31 17:19:49 2026-07-31 17:32:52
[뉴스토마토 최태용 기자] "사람을 착취하는 일을 없애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사회적 보장에 의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살 수 있는 세상. 말하자면 우리들의 이상인 복지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31일 오전 서울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죽산 묘역에서 '죽산 조봉암 선생 67기 추모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인천시)
 
1956년 11월10일 당시 서울시립극장에서 조봉암 진보당 당수가 창당대회에서 말한 개회사입니다.
 
인천 강화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제헌의원과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죽산(竹山) 조봉암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와 죽산조봉암선생유족회가 주최하고 인천시가 후원, 새얼문화재단·인천시교육청·강화군청·중랑구청·창년조씨(강화)종친회 등이 협찬하는 '죽산 조봉암 67기 추모식'이 31일 서울 망우역사문화공원 죽산 묘역에서 진행됐습니다.
 
추모식에 참석한 박찬대 인천시장은 추도사를 통해 "조봉암 선생은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서 농지겨혁을 완수해 수백 년 묵은 지주제를 걷어냈다"며 "그 개혁이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를 일으킨 주춧돌이 됐다"고 했습니다.
 
이어 "선생은 (진보당 사건으로) 차가운 형장에서 생을 마감했다가 반세기가 훌쩍 지난 2011년에야 무죄를 선고받았다"며 "하지만 아직 명예회복이 완전치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독립유공자 서훈이 필요하단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승만 정권에서 검찰은 1958년 2월16일 간첩 밎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봉암 등 진보당 간부들을 기소했습니다. 조 선생은 1심에서 징역 5년 선고 받았는데, 항소심에서 진보당의 '평화통일론'이 정부 방침에 위배된다며 사형이 선고됐습니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결국 1959년 7월31일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이후 유족의 요구로 재심이 진행됐고 2011년 1월20일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대표도 추모식에서 "죽산은 독립운동가이자 공직자, 정치인으로서 농지개혁을 통해 사회경제적 개혁에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죽산의 공적을 인정해 그의 사상이 되살아날 수 있게 최선을 다 하겠다"며 "대전환 시대에 불평등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의 생각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김교흥 국회의원도 "죽산은 당시 시대정신을 알고 미래를 이야기한 사람"이라며 "법적 명예는 회복이 됐지만, 역사적 평가를 다시 받을 수 있도록 (독립유공자) 서훈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가보훈부는 죽산 선생이 일제 말기 국방헌금을 기탁했다는 의혹을 들어 장기간 서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1940년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에 '성관사 조봉암'이라는 이름으로 신년 광고를, 이듬해 12월23일자에는 '인천 사는 조봉암 휼병금 150원을 냈다'는 기사가 실렸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성관사'는 당시 등기 기록이나 상공업편람 존재하지 않는 업체로 확인됐습니다. 신의주형무소 출감 직후 생계조차 곤란했던 그가 거액의 신년 광고를 냈다는 것 역시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죽산 선생은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해 1년 동안 옥고를 치렀고, 중국 상하이에서 민족해방운동을 벌이다가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최태용 기자 rooster8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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