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일그러진 우리들의 K-성과급제
2026-09-14 06:00:00 2026-09-14 06:00:00
올해 한국 사회를 뒤흔든 단어는 ‘성과급’이다. 반도체로부터 자동차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실적이 호전된 사업장마다 이익의 일정 비율을 요구하는 성과급 투쟁에 몸살을 앓고 있다. 보통 노사 대립은 경기 침체기에 구조조정을 놓고 격렬해지는데, 호황기에 이익 배분을 위한 투쟁이 벌어지니 희한한 일이다. 
   
정부는 지난 3일 ‘경영 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지침’을 발표해 기업 이익에 연동하는 방식의 성과급은 의무적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성과급 규모는 노사가 협의해 정할 문제이지 노조가 쟁의를 통해 쟁취하는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가 서둘러 개입해 제동을 건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침으로 갈등을 봉합하기엔 한계가 있다.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한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과 시행령을 고치지 않고 지침만으로 성과급을 꼭 집어 쟁의 대상에서 뺀 것은 법적 논란의 소지가 크다. 영업이익 N% 성과급은 노조와 회사 당사자뿐 아니라 투자자를 비롯한 외부 이해관계자가 관여된다. 소송까지 가면 법원은 지침보다 법리로 판단할 것이다. 결국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논쟁과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성과급이란 종업원과 회사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제도다. 종업원이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 회사에 돈을 벌어주면 보상으로 성과급을 주는 것이다. 직원과 회사가 다 같이 돈을 버니 서로에게 좋다. 그런 성과급이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노조 대 회사’에서 시작된 갈등이 ‘노조 대 주주’, ‘노조 대 노조’ 그리고 ‘원청 대 하청’의 다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심지어 정부까지 반도체세와 같은 특수세를 만들어 한몫 끼려고 했다. 
 
상생의 취지인 성과급제가 갈등의 원천이 된 이유는 뭘까? 성과급제는 나라마다 문화마다 다르다. 미국은 개인주의라 성과급도 개인별로 적용된다. 개인 성과가 보상뿐 아니라 임금과 승진까지 결정한다. 미국에서 성과급이 발전한 이유는 주주자본주의가 정착되어 기업가치와 주주이익을 중시하고, 인사제도는 근속연수보다 직무와 성과 기준으로 운영되며, 노동시장 이동성이 높아 장기근속 보상의 필요성이 작기 때문이다.
 
일본은 집단주의 문화를 반영해 개인보다 기업 단위로 성과급을 정한다.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이후 장기 불황을 겪으며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성과주의가 강조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기업은 실적과 연동된 상여금(보너스)을 기본급에 추가해 준다. 성과연봉제는 주로 관리직과 전문직에 적용되며 일반 직원에게는 개인 성과보다 조직 성과를 더 많이 반영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 기업은 1980년대까지 일본식 연공서열 임금 체계를 채택해 호봉제와 정기상여금 중심으로 운영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개혁을 이행하며 성과급제를 도입했다. 특히 삼성전자, LG,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들이 성과 보상 체계를 적극 도입했다. 하지만, 미국식의 개인 성과급제까지 나간 기업은 거의 없다.   
 
삼성전자에서 비(非) 반도체 분야를 맡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중심의 동행노동조합원들이 지난달 21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 기업의 성과급제는 기업 단위의 집단주의에서 부서 단위의 소집단주의로 세밀해진 형태로 발전해 성과급은 기업성과급과 부서성과급으로 구성된다. 회사 이익과 연동된 기업성과급에 더해 사업 부서의 실적을 반영한 부서성과급을 준다. 지금까지는 성과급에 한도가 있어 성과급의 액수가 크지 않았고 직원들 간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올해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전면파업을 무기로 압박하며 성과급 한도를 없애 메모리 사업부 직원은 최대 6억원의 성과급을 받게 되며 갈등이 불거졌다. 
 
복합적 요인을 가진 성과급 갈등이 지침 하나로 해소되긴 어렵다. 미국식 개인 성과급제는 한국 여건에 맞지 않는다. 삼성전자도 준법감시원위원회를 비롯해 경영진이 성과급에 관한 전문가 의견을 들어 개선안을 모색한다고 한다. 삼성전자가 국가 대표 기업이기는 해도 한 회사의 노력만으로 성과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 국회, 기업, 노조, 학계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상생 지향적 한국형 성과급제를 논의하는 것이 시급하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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