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완성차업체의 미국 내 현지생산을 허용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북미 시장을 집중 공략 중이던 현대차그룹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동안 미국 행정부의 중국 배제 기조에 맞춰 대규모 현지 투자를 단행해 온 현대차로서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 가능성에 술렁이는 분위기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각) 미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에 와서 공장을 열고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면 괜찮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완성차업체들처럼 미국인을 고용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면 진입을 막지 않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한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중국 업체가 멕시코에 생산 거점을 두고 완성차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 같은 발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워싱턴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것으로, 미·중 협상 과정에서 중국차의 미국 시장 진입 허용 여부가 논의될 가능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시장은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도입한 규제로 중국 완성차업체의 현지 생산과 판매가 사실상 전면 금지된 상태이며, 중국산 전기차에는 100%가 넘는 관세도 부과되고 있습니다.
이에 GM과 포드, 토요타, 폭스바겐, 현대차, 혼다, 스텔란티스 등을 대표하는 미국자동차혁신연합(AAI)은 최근 의회에 중국 자동차의 미국 시장 진입을 영구히 차단하는 법안을 연내에 처리해 달라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완성차업계 전반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입니다.
존 보첼라 AAI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서한에서 “아직 미국 시장 내에서 이러한 현상이 본격화되지는 않았으나, 이 위협의 규모와 시급성을 고려할 때 올해 회기가 끝나기 전 중국산 차량,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금지를 명확한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차체 공장에서 아이오닉 5가 생산되는 모습. (사진=현대차그룹)
실제 정책으로 구현될 경우 북미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시장에서 입지를 다져온 현대차·기아에는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미국의 대중국 규제 장벽을 기회 삼아 북미 시장 점유율을 공격적으로 확대해 왔기 때문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나 올해부터 2028년까지 4년간 210억달러, 한화로 약 31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자동차 생산 분야에 86억달러, 부품·물류·철강 분야에 61억 달러, 로보틱스·AI 등 미래산업·에너지 분야에 63억달러를 각각 집행하는 내용입니다.
이 가운데 조지아주에 준공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는 연간 생산능력을 기존 30만대에서 50만대로 늘리는 증설 작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앨라배마·조지아 등 기존 공장에 대한 설비 현대화 투자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은 향후 연간 120만대 생산 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비야디(BYD)나 지리 등 압도적인 가격경쟁력과 첨단 소프트웨어를 앞세운 중국 업체들이 미국 현지 공장을 짓고 세제 혜택까지 받게 될 경우, 대규모 투자를 통해 쌓아온 현대차의 경쟁 우위 효과가 상당 부분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는 “현대차나 일본의 소규모 자동차 회사는 상대적으로 더 큰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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