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하림 기자]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국내 사모펀드(PEF)의 기업 인수·운영 방식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차입을 활용한 기업인수와 자산매각을 통해 투자수익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인수기업의 본업 경쟁력과 수익성을 얼마나 높였는지가 쟁점입니다. 해외 주요 PE가 산업 전문 인력을 활용해 기업 운영 개선에 나서는 가운데 국내 PEF도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27일 자본시장연구원의 ‘국내 PEF의 가치 제고와 투자성과 분석: 제도 도입 20년의 평가’에 따르면, 국내 PEF는 투자기업의 매출 확대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성과를 냈지만 수익성 개선 측면에서는 해외 PE와 차이를 보였습니다.
몸집 키운 국내 PEF…수익성 개선은 과제
국내 PEF 시장은 지난 20년간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의 주요 투자 주체로 성장했습니다. 2004년 말 4000억원 수준이었던 PEF 결성 규모는 2023년 말 136조4000억원으로 확대됐습니다. 같은 기간 펀드 수는 1126개로 늘었습니다. 운용사 수도 2007년 말 35개에서 2023년 말 422개로 증가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그러나 외형적 성장과 별개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식에는 개선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05~2023년 회수가 완료된 국내 PEF 투자 135건을 분석한 결과, 평균 3.8년의 투자 기간 동안 피투자기업의 기업가치는 35% 증가했습니다. 기업가치 상승분을 요인별로 분석한 결과, 매출 증가가 73.3%, 가치평가배수 상승이 36.2%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이익률은 오히려 하락해 두 요인이 만들어낸 기업가치 상승분을 9.5% 상쇄했습니다. 기업 규모 확대가 수익성 개선을 뒷받침하지 못한 것입니다.
국내 PEF의 수익성 개선 역량에 대한 문제의식은 최근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제기된 인수 이후 경영 책임 논란과도 맞물리고 있습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홈플러스 사태를 “과도한 차입매수(LBO)와 세일앤리스백(S&LB) 방식의 자산매각으로 부채 상환에 치중하다 이커머스 전환 등 본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여력이 줄어든 사례”로 평가했습니다.
해외 PE는 운영 개선에 주력…국내는 재무적 구조조정 의존
한편 해외 PE의 기업가치 제고 방식에서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의 글로벌 바이아웃 분석에 따르면 2016~2021년 기업가치 상승분에서 매출 증가가 차지한 비중은 38%, 가치평가배수 상승은 56%였습니다. 이익률 개선도 기업가치 상승분의 6%를 차지했습니다. 국내 PEF와 달리 해외 PE는 수익성 개선도 기업가치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기업인수 이후 운영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전문가 평가가 나옵니다. 강 교수는 글로벌 대형 PEF들이 산업 전문 인력을 투입해 신시장 개척과 디지털 전환, 기존 사업과 연관된 기업을 추가로 인수하는 볼트온(Bolt-on) M&A 등을 추진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국내 PEF는 원가 절감과 인력 감축, 비핵심 자산매각 등 재무적 구조조정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강 교수는 국내 운용사 인력이 투자은행(IB)과 회계법인 출신 금융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돼 제조·유통 등 실물 현장의 운영 혁신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펀드 만기가 5~7년 정도로 길지 않아 장기간이 필요한 사업 구조 개선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비용 감축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장기투자·운영 역량 강화 필요
국내 PEF의 장기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투자 이후 운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PE 제도 20년의 성과 평가와 과제’에서 “국내 PE는 투자 이후의 수익성 제고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비용 절감을 포함하는 전반적 오퍼레이션 관점의 가치 제고 역량의 강화를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해외 PE가 다양한 형태의 가치 제고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며 국내 PE도 관련 조직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강 교수는 “국내 PEF들도 산업별 오퍼레이팅 전문가 그룹의 상시 조직화, 10년 이상 호흡을 맞추는 장기 펀드 도입을 통한 체질 개선 역량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장기 펀드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LP)가 운용사(GP)를 선정할 때 단기 수익률뿐 아니라 피인수기업의 매출 성장률과 설비투자 집행률, 고용 안정성 등을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또한 “대상 기업의 영업현금흐름으로 원리금 감당이 가능한 범위 내로 레버리지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차입상환비율에 상한을 설정하고, 자산 유동화 이후 임대료 부담을 사전에 점검하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부동산 매각대금의 일정 비율을 본업이나 신규 사업에 재투자하도록 하는 한편, “인수금융을 전면 제한하기보다는 인수금융 대주단(금융권)의 여신 심사 책임을 엄격화하고, LBO 시 담보 차입 규모와 유동화 계획에 대한 공시 의무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해외 감독 체계도 참고 대상으로 거론됩니다. 심수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 사모펀드 시장 규제변화 및 시사점’에서 미국이 일정 규모 이상 PEF 운용사에 GP 교체와 펀드 해산 요청 등 주요 사건을 분기별로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유럽도 운용사의 지배구조와 위험관리 체계를 사전에 심사해 인가하고, 이후에도 차입 규모와 수수료 구조 등 주요 정보를 감독당국과 투자자에게 보고·공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규제 강화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명백한 법 위반은 정부가 단속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과도한 규제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하림 기자 poetr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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