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장병의 피와 헌신을 정쟁의 불쏘시개로 삼지 마라
색깔론 덧씌우는 행태는 무지와 억지의 극치
2026-09-28 09:07:01 ㅣ 2026-09-28 09:07:01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지뢰 추정 폭발 사고 현장 합동조사에 앞서 군 장병들이 26일 현장 기동로 확보와 작전환경 조성 작전을 하고 있다. (사진=합참)
 
지난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최전방의 짙은 수풀 속에서 또다시 굉음이 울렸다. 수색로 개척작전을 수행하던 육군 제25보병사단 장병 18명이 지뢰 폭발에 휘말린 것이다. 
 
선두에서 부대원들을 이끌던 수색대대장 조청완 중령과 현장을 지키던 중사 2명이 처참한 파편에 쓰러졌고, 대대장과 수색작전팀장은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었다. 극심한 고통으로 마취에서 깨어난 순간에도 "부대원들은 무사하냐"고 먼저 물었다는 대대장의 절규 어린 목소리는 우리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돌이켜보면 과거에도 DMZ 수색 작전 중 대대장이 불의의 지뢰 사고로 부상을 입어 온 군과 국민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던 비극이 있었다. 장교의 꽃이자 대대의 심장인 지휘관이 앞장서 사선을 넘다 피를 흘린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데, 이번에 또다시 영관급 고급장교를 포함한 정예 간부들이 발밑의 시한폭탄에 참변을 당했으니 참담하고 비통하기 짝이 없다. 
 
비무장지대는 일견 평화롭기 비할 바 없는 곳이지만 성인 키를 훌쩍 넘는 우거진 수풀, 발을 한 번 잘못 디디면 그대로 목숨을 잃는 극한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부하들보다 한 발 앞서 흙바닥을 밟아나갔던 그들의 숭고한 노고와 거룩한 희생에 옷깃을 여미며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올린다.
 
그러나 사선에서 피 흘린 영웅들의 상처가 지금 선명한데, 우리 정치권이 보여주는 민낯은 부끄러움을 넘어 분노를 치밀게 한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좇는 정치권은 사고 원인이 과학적으로 규명되기도 전에 하이에나처럼 떼를 지어 군의 목을 죄고 있다. '군이 경계에 실패했다', '북한군이 넘어와 지뢰를 묻는 동안 무엇을 했느냐', '군사분계선을 침범했는데 왜 경고사격을 안 했느냐'는 식의 무책임한 선동이 난무한다. 적과 맞서 국토의 최전선을 지키는 군의 사기를 짓밟고, 장병들의 피를 자신들의 정치적 불쏘시개로 태우려는 파렴치한 정쟁의 굿판이다.
 
현재 군 당국이 열어둔 사고 원인은 복합적이다. 70여 년 분단사 속에 묻힌 아군의 과거 미확인 지뢰일 수도 있고, 올여름 유례없는 폭우로 북측 수계에서 떠내려온 북한군 유실 지뢰일 수도 있으며, 최근 북한이 벌이는 국경선화·요새화 작업 과정에서 묻어둔 지뢰일 가능성도 있다. 
 
신임 국방부 장관이 군사적·지형적 정황을 바탕으로 과학적인 가능성을 언급하자 "적을 두둔하느냐"며 색깔론을 덧씌우는 행태는 무지와 억지의 극치다. 지금 그 어느 누구도 지뢰의 주인을 섣불리 단정할 수 없으며,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직접 묻었다고 확언할 물리적 증거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책상머리에 앉아 "당장 현장조사를 하라"고 군을 사지로 등 떠미는 야당의 망발이다. 완벽한 안전 통로조차 확보되지 않은 생지옥 같은 지뢰밭에 다시 병력을 밀어 넣으라는 말은 '들어가서 또 죽어보라'는 잔인한 살인 청구서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번 작전 역시 유엔사 정전위원회의 현장 확인을 위해 통로를 열어주려다 발생한 참사였다. 
 
비바람에 썩어 유실된 군사분계선 말뚝, 70년간 하천 침식과 풍우로 지형이 수시로 변해 경계선조차 남북으로 뒤흔들린 최전방의 가혹한 현실을 단 한 번이라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국가 안보는 정략의 먹잇감이 아니다. 정치권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정쟁의 삿대질을 멈추고, 피 흘린 장병들이 평생 짊어질 상처에 최고의 국가적 예우와 치료를 보장하며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이다. 나아가 위험천만한 DMZ 작전 환경에 첨단 비금속 지뢰 탐지장비와 원격 탐지 장비를 보급할 예산과 입법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DMZ의 맹독 같은 흙탕물 속에서 묵묵히 청춘을 바치는 군인들의 피와 희생 앞에 정치권은 더 이상 부끄러운 죄를 짓지 마라. 안보라는 성역 앞에 정치가 감히 나댈 자리는 없다.
 
서남열 국방안보포럼 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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