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새벽에 미리 다녀온 길
2026-10-29 12:10:44 ㅣ 2026-10-29 12:10:44
회의 준비로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날이었다. 직원들이 오기 전이라 복도는 조용했다. 본부 미화를 맡고 계신 H 주임이 화장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늘 하던 대로 인사를 건네고 지나치려는데, 걸음걸이가 눈에 걸렸다. 한쪽 다리를 조심스럽게 옮기는,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주임님, 어디 불편하세요?"
 
H 주임은 괜찮다고만 했다. 마음이 바빴던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지나칠 뻔했다.
 
내게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모아 둔 이야기들이 있다.
 
25년쯤 전, 30대 후반에 장관을 보좌하던 시절이었다. 장관의 관용차를 모는 기사 비서와 인사를 나눴는데, 훤칠한 키에 인물이 참 좋은 분이었다. 그분은 다음 주 일정을 받으면 가보지 않은 곳이 있는지부터 살폈고, 있으면 그 길을 미리 다녀왔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시느냐고 묻자, 대답은 간결했다. 장관님은 약속 장소에 너무 일찍 도착하셔도, 늦게 도착하셔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랏일을 하는 분의 시간을 일분일초도 헛되이 쓰게 할 수 없고, 늦어서 당황하시게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했다. 어느 날은 아침 아홉 시에 만나자마자 지나가듯 말했다. 일정이 갑자기 바뀌어 처음 가는 곳이 생기는 바람에, 새벽에 미리 다녀왔다고. 날씨 이야기를 하듯 담담했다.
 
공단에 와서도 그런 분들을 만났다. 구민의 전당에서 미화를 맡았던 최 주임은 눈에 띄지도 않는 액자 위까지 늘 닦았다. 이유를 여쭈자, 주민들이 이용하는 곳이고 우리는 공기업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내 마음은 같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기 몫 이상을 해내는 사람들에 대한 감탄, 그리고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조용한 다짐.
 
다시 그날 아침으로 돌아간다.
 
괜찮다는 H 주임에게 나는 몇 번을 더 물었다. 그제야 H 주임은 주저하며 털어놓았다. 새벽에 집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고 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는 대신 나와 줄 사람을 구하기 어렵고, 그러면 곧 출근할 직원들이 정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하루를 시작하게 될 것 같아 그냥 나왔다고 했다.
 
다쳐서 오늘은 못 나간다고 했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본인도 그걸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H 주임에게는 동료들의 아침이 자기 다리보다 먼저였다.
 
그 마음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나는 곧바로 담당 팀에 연락해 H 주임이 귀가해 진료를 받도록 했고, 며칠 쉬면서 치료에 집중하시라고 했다. 고마운 마음이었지만, 그 다리로 하루를 버티게 둘 수는 없었다.
 
내가 여러 번 묻지 않았다면 H 주임은 끝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아침 화장실은 여느 날처럼 깨끗했을 것이고, 출근한 직원들은 그 깨끗함이 어떤 걸음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른 채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25년 전 기사 비서의 새벽과 H 주임의 새벽은 닮아 있었다. 기사 비서가 장관의 일분일초를 지키려 했다면, H 주임은 동료들의 아침을 지키려 했다. 두 분 모두 누가 시키지 않은 길을 먼저 나섰고, 그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액자 위를 닦던 최 주임도 그랬다.
 
돌아보면 내가 모아 둔 최선들은 모두 자기 아닌 누군가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알아채기 전에, 조용히 끝나 있었다.
 
그날 이후 깨끗하게 정리된 공간을 지날 때면, 누가 이곳을 먼저 다녀갔는지 떠올리게 된다. 저절로 깨끗해지는 공간은 없고, 저절로 굴러가는 하루도 없다. 그 뒤에는 늘 누군가의 이른 걸음과 땀방울이 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그분들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작은 존중일 것이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언제나 새벽을 먼저 다녀간 사람이 있다.
 
김주성 노원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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