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차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를 계기로 필리핀을 방문한 강신철 국방부 장관이 10월28일(현지시간)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을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문제가 한·미 군사외교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전작권은 한반도 유사시에 한국군 대부분과 일정한 미군 전력을 지휘하는 권한이고 미군 대장인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반드시 조기에 환수해야 하고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10월19일)
한·미 두 나라 국방장관이 주관하는 연례 안보협의회(SCM)가 이 문제를 다뤄야 하는데 올해 열리지 못하고 내년 초로 미뤄졌습니다. 전작권 환수 시기와 조건에 관한 이견이 표출된 가운데 벌어진 일입니다. 전작권과 관련한 옛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입니다. 1593년 1월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일본군에 빼앗겼던 평양성을 탈환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 거듭 패퇴하던 조선으로서 중요한 반격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때 명군 장수 이여송은 궁지에 몰린 일본군을 섬멸하지 않고 퇴로를 열어주었습니다. 명군의 손실을 줄이려고 계산했을 겁니다. 이후에도 조선은 일본군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를 원했지만, 명군은 소극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군사 지휘권이 문제였습니다. 명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할 때는 조선군이 명나라 장수한테 지휘를 받아야 했습니다.
강화 교섭을 명나라가 주도한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조선이 반대하는 가운데 명나라 심유경은 일본군의 고니시 유키나가 측과 교섭을 진행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영토를 일부 떼어 주고 조선 왕자와 대신을 인질로 제공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자기 나라 영토와 백성의 운명이 걸린 문제인데 정작 조선은 협상에서 배제되다시피 했습니다. 명나라가 협상 내용을 제때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명나라와 조선이 연합군을 운영했지만, 두 나라는 이해관계가 달랐습니다. 조선은 침략군을 몰아내고 나라를 회복하려 했고, 명나라는 전쟁 확대를 막고 자국 부담을 줄이기를 원했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는 더욱 참담한 일이 벌어집니다. 조선 정부가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자 일본도 군대를 보냈습니다. 일본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조선 내정에 간섭하는 한편 청일전쟁을 벌였습니다. 전투를 중단했던 동학농민군은 일본 침략을 분쇄하려고 다시 봉기했습니다.
이에 일본군과 조선 관군이 연합하여 동학농민군 진압 작전을 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정리한 『동학농민혁명사일지』를 보면 1894년 11월9일 일본군 인천병참사령관 이토 스케요시가 동학농민군 진압 부대에 내린 훈령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동학농민군의 근거지를 찾아 소탕하고 지도자를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파견 조선군 각 부대의 진퇴와 조달은 모두 일본 사관의 명령에 따르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조선군의 진격과 후퇴, 군수 조달까지 일본군 장교의 명령에 따르도록 했다는 뜻입니다. 조선 군대가 외국군 지휘를 받아 조선 농민군을 공격했습니다. 일본군과 조선 관군 연합군은 우금치 등에서 동학농민군을 격파했습니다.
물론 이것을 오늘날 동맹국 사이의 합의에 따른 작전통제권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당시 일본은 조선의 독립과 주권을 침해하면서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군사 지휘권을 행사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군대의 행동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일깨워줍니다.
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사령관이 9월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센터 태극홀에서 열린 2026 한미 연합워파이팅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결이 다른 외국 사례도 많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맞서 싸우던 영국과 프랑스, 미국은 프랑스의 페르디낭 포슈 장군에게 연합군의 전략적 지휘권을 맡겼습니다. 그러나 1918년 4월3일 체결한 협정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었습니다. 영국·프랑스·미국의 각국 총사령관은 자기 군대에 대한 전술적 지휘권을 최대한 행사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포슈의 명령이 자국 군대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판단하면 자국 정부에 이의를 제기할 권리도 명시했습니다.
오늘날 나토와 미일 동맹에서도 각국 정부의 군사적 의사결정권을 유지하면서 연합작전을 수행하는 다양한 체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1950년 북한군 남침으로 대한민국 존립이 위태로웠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지원이 절실했습니다. 한국군은 워낙 취약했습니다.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은 "현재의 전쟁 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국군 지휘권을 이양한다"는 서신을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냈습니다.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 국가입니다. 미국 연구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 기준 재래식 전력 세계 5위 군사력을 갖췄습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다음 순서입니다. 그동안 평시작전권 개념을 만들거나 하는 등으로 지휘권 제도를 조금씩 바꿨지만, 핵심 권한인 전작권은 여전히 미군 대장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서신에서 "현재의 전쟁 상태가 계속되는 동안"이라는 단서를 달고 임시 비상 조처로 시작한 일이 76년째 계속되다 보니, 임시 조처가 통상적인 조처이며 하나의 제도인 것처럼 착시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의 조명 연합군,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일본군과 조선 관군, 제1차 세계대전의 연합군은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에서 형성된 군사 지휘 체계였습니다. 이들을 오늘날의 전작권 제도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례들은 한 가지 공통된 질문을 던집니다. 자기 나라 군대의 작전을 누가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지는가?
전작권을 환수해도 미군이 철수하지 않고, 한·미 연합방위 체제는 그대로 유지합니다. 한국군이 책임지고 작전을 주도하도록 지휘 체계를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수직적 의존이 아니라 서로 이익을 조율하며 협력할 때 동맹이 더욱 발전하죠.
역사는 외국과 군사협력을 하더라도 자국의 판단과 결정권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그 결과는 우리 자신이 감당해야 합니다. 전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도 당연히 우리가 주도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장과 객원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국방 생태계에서 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언론의 언어 왜곡>과 같은 책을 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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