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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남성우월주의 박멸 위해 마초상 수여를
2017-08-01 06:00:00 2017-08-01 06:00:00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페미니스트란 간단히 말하면 여성문제에 주목하며 남녀평등을 위해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주인이 되자 구중궁궐은 페미니즘의 온실이 되리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초인 문화공연기획자 탁현민을 청와대 선임행정관으로 임명해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탁 행정관의 여성 비하 수준은 위험수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각종 강연에서 서슴지 않고 여성을 성적 도구화했고, 2007년 출간된 저서 ‘남자 마음 설명서’에서는 차마 낯 뜨거워 인용조차 할 수 없는 여성의 신체 부위를 희화화하고 있다. 이러한 탁 행정관의 남성우월주의(마치즘)에 여성계뿐만 아니라 여성부 장관까지 경질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청와대는 오히려 그를 감싸기에 급급하다. 어디 이뿐인가. 탁 행정관을 비호하는 세력들은 SNS에 과거 발언을 트집 잡아 소란을 피운다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페미니스트인 문 대통령의 최종 용단을 기대하지만 이는 아마도 부질없는 꿈인 듯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달 19일 ‘스티브 잡스’ 스타일의 100대 국정과제 보고대회 행사 후 “내용도 잘 준비됐지만 전달도 아주 산뜻한 방식으로 됐다”며 행사 기획자인 탁 행정관을 우회적으로 칭찬했다. 청와대 여야 대표회동에서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탁 행정관의 왜곡된 성의식을 들어 해임을 건의했지만 역시 메아리는 없었다.
 
청와대의 태도가 이렇다면 탁 행정관은 그대로 면죄부를 받고 끝나는 것인가. 프랑스라면 어떤 조치가 취해질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녀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는 마치즘이 존재한다. 프랑스 또한 우리에 버금가는 남성지배 사회다. 여성 인권의 중요성이 부각된 지 50년이 채 안 된다. 프랑스 여성들은 남성우월주의로부터 여성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시키기 위해 부단히 싸워왔다. 그러나 마치즘은 좀처럼 기세가 꺾이지 않았고 여성들은 하는 수 없이 단체를 만들어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1999년 만들어진 ‘여감시견(Les Chiennes de garde)’이다. 역사학자 플로랑스 몽트레노(Florence Montreynaud)와 소설가 이자벨 알롱소(Isabelle Alonso)는 영어의 워치도그(watchdog)를 불어로 번역해 여감시견이란 단체를 만들었다. 여감시견의 미션은 공공장소, 언론, 광고 등을 통해 성적 모욕을 주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이다. 여감시견이 지향하는 목표는 세 단어로 “해독하다, 고발하다, 저항하다”이다. 이들은 “페미니즘은 선량한 것이다. 마치즘은 일상을 절망케 한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여성을 모독하는 이들에게 저항한다.
 
그리고 2009년부터는 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에 프랑스 최고의 마초 챔피언에게 마초상을 수여하고 언론에 공개한다. 제정된 첫 해에는 파리의 대주교인 앙드레 뱅 투르아(Andre Vingt Trois)에게 주어졌다. 뱅 투루아는 라디오 노트르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육성된 여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커트에 연연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무언가를 넣는 것이다”라는 여성 비하 발언을 했다. 2010년에는 축구클럽 몽펠리에 회장 루이 니콜렝(Louis Nicollin)에게 돌아갔다. 니콜렝은 자기 선수들은 “계집애들이 아니다”고 자랑하며 입담을 늘어놓아 불명예의 영광을 안았다.
 
‘2016년 마초상’은 공화당의 상원의원 장 프랑수아 마이에(Jean-Francois Mayet)에게 주어졌다. 마이에 의원은 건강법 제정을 둘러싼 한 토론에서 “프랑스 의학의 공동화(空洞化) 원인 중 하나는 여성화다. 75%가 여성이다. 남녀평등 시대라지만 그녀들은 역시 아이를 낳기 위해 존재한다”고 발언했다. 올 세계 여성의 날엔 파리 근교 플레시 로뱅송 시 시장인 필리프 페메제크(Philippe Pemezec)에게 수여됐다. 페메제크는 한 언론에 나와 성적행동을 묘사하며 파리여시장 안 이달고를 모욕했다.
 
이처럼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비하하거나 모독하는 자들에게는 불명예 상이라도 안겨주고 사회적으로 공개를 해 마치즘을 박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초들은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지 모르고 반성도 할 줄도 모른 채 여성의 인권을 말살한다.
 
절대 눈감고 넘길 수 없는 수위까지 가버린 탁 행정관의 왜곡된 성의식을 청와대가 눈감아주고 계속 한솥밥 먹기를 고집한다면 어쩌겠는가. 여성단체라도 나서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프랑스의 시민단체 여감시견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올해부터 마초상을 제정해 보자. 그리고 그 마초상 1호를 탁 행정관에게 수여해 보면 어떨까. 성차별주의자(섹시스트)들의 행동에 일침을 가해야만 페미니즘이 발전하고 여성의 인권은 살아난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한국이 진정한 남녀평등 사회로 나아가려면 남성 페미니스트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보다 여성들 스스로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페미니즘은 선량한 것이다. 마치즘은 일상을 절망케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행동에 나서보자.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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