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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재판연구원 제도, 전면 개편해야
2018-12-04 06:00:00 2018-12-04 06:00:00
우리나라에 재판연구원이 도입된 지 8년이 지났다. 재판연구원출신 법관도 많이 배출되었다. 도입초기에는 여러 잡음도 있었지만 최근 논의되고 있는 사법개혁과제에서 언급도 되지 않는 점에서 외견상 정착단계에 이르렀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불과 몇 년 전에 우려되었던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해소된 것인지. 최근 불거진 여러 현상들을 보면 도입 초기에 비판적 시각을 가졌던 필자로서는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재판연구원은 사건의 심리 및 재판에 관한 조사·연구, 그 밖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 중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한 임기제공무원을 말한다. 2011년에 개정된 법원조직법에 의해 법조일원화와 함께 도입되었다. 흔히 미국의 Law Clerk 제도를 본 따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개혁 일환으로 도입된 법조일원화에 따라 과거와 달리 일정한 변호사경력이 있는 자 중에서 법관을 임명한다. 법조일원화와 재판연구원은 무슨 관계가 있기에 함께 도입되었을까. 그 근저에는 법원이 임명한 재판연구원출신들을 선호하지 않을까라는 의심이다. 이를 통해 법조일원화가 형해 화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내재된 것이다.  
 
아니다 다를까 법원은 경력법관임명을 할 때 재판연구원출신을 선호했다. 2015년 로스쿨 출신 경력법관 37명 중 27명이 재판연구원 출신이었다. 당시 변호사단체들은 대법원이 순혈주의 타파라는 법조일원화의 취지를 스스로 부인하고 있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유감스럽지만 그 후로도 변함은 없다. 2016년 임명된 로스쿨 출신 법관 26명중 재판연구원 출신은 15명이었고, 2017년에는 35명 중 25명에 달했다. 재판연구원도입이 법원순혈주의를 의도한 숨은 속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까. 
 
또한 ‘후관예우’논란이 있다. 재판연구원출신이 경력법관임명이 잘되는 만큼 대형로펌에서는 이들을 경쟁하며 채용한다. 연초에 신규변호사채용을 광고하는 기사에는 ‘재판연구원’ 출신이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로펌에서 이들을 애지중지할 것임은 충분히 예견되며, 이들은 얼마 후면 법관으로 임명된다. 법관으로서 재판할 때 친정로펌이 등장해도 평정심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두려운 것은 인지상정이라는 인간의 속마음이다. 더구나 재판연구원은 수임제한규정 대상에도 제외되어 있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신임 재판연구원을 임명하면서 “앞으로 법조일원화 및 평생법관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면서 법관의 연령과 법조경력이 급속하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에 따라 분쟁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재판연구원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젊은 법관이 사라지게 되므로 젊은 재판연구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재판연구원의 ‘역할’은 무엇일까. 법에는 사건의 심리 및 재판에 관한 조사·연구, 그 밖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최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재판장이었던 김모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사건 배당 뒤 공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무죄 취지의 판결문 초안을 작성해두었고, 공판이 시작된 뒤에는 이 초안을 재판연구원에게 보내 수정작업 등을 지시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필자가 든 의문점은 재판연구원이 판결문 초안의 수정작업을 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헌법 상 재판받을 권리에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자격과 절차에 의하여 임명되고 독립이 보장된 법관에 의한 재판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재판연구원은 법관이 아니다. 그럼에도 판결문 초안의 수정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인가. 
 
혹자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Law Clerk도 판결문 초안을 작성하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판결문 초안 작성을 ‘그 밖에 필요한 업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재판받을 권리 침해 소지가 충분히 있다. 비단 김모 부장판사의 재판부에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보장도 없다.  
 
업무효율 측면에서도 실제로 재판연구원이 재직 중인 재판부가 그렇지 않은 재판부보다 배당은 더 많은지, 업무효율성이 있는지도 전혀 검증된 바 없다.  
 
최근 한 고등법원판사가 과로로 쓰러져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우리나라 법관들의 업무량은 살인적이다. 비록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고위직 법관들 이름이 오르내리고, 이로 인해 사법 불신이 더욱 심화되고 있지만,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밤새 두꺼운 기록을 검토하고 진지하게 당사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법관들이 다수다.  
 
법조일원화 회피, 후관 예우, 재판받을 권리 침해 등 여러 논란이 있는 재판연구원제도에 대해 전면적인 개선논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내년도 재판연구원 관련 예산을 179억 9500만원으로 잠정 편성했다고 전해진다. 이 돈이면 법관 수를 늘리는 것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 재판연구원이 아닌 법관을 늘려 법관의 업무부담을 줄이는 것이 국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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