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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한국 영화계의 ‘소탐대실’
2019-01-03 00:00:00 2019-01-03 00:00:00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잃게 되는 상황을 우리는 지양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알면서도 이 같은 실수를 반복 한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랬다. 지난해 나는운동에 집착했다. ‘몸무게란 숫자에 집착했다. 무거운 무게를 들어 테스토스테론의 효율적 발산이 만들어 낸근육의 팽창감에 집착했다. 울끈불끈해지는 몸을 보며 만족감을 느꼈지만 정작 한 해가 마무리될 때쯤 남은 건 나조차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무너져 갔던 심리적 붕괴와 육체의 비명뿐이었다. 내 육체에 생겨난 작은 균열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을 발전이라고 착각했다. 선입견과 고정관념, 그런 것들이 내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다.
 
선입견’. 어떤 대상에 대해 이미 마음속에 갖고 있는 고정적 관념이나 관점이다. 고정관념은 잘 변하지 않는 확고한 의식이나 관념 또는 지나치게 일반화된 생각들이다.
 
나는 체중이 줄고 근육이 거대해지면 그게 곧 건강이란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내부 장기나 신경과 혈관, 심리적 문제 등에 대해선 간과했다. ‘건강을 담보로 혼자만의 놀이에 빠져 있던 셈이다.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며 지나간 한 해를 돌이켜보면 이런 일은 비단 개인의 건강 문제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2018년 영화계를 마주하면서 나는 수없이 많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한국형 대형 판타지신과 함께의 쌍천만을 쉽게 예상하지 못했듯 많은 영화의 흥행 예상치에 번번이 뒤통수를 맞았다. 대중의 선택은 내 예상과 늘 일치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발생한 간극은 영화와 대중을 바라본 내 선입견으로부터 비롯됐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함정에 빠져있던 건 나만이 아니었다. 대중 역시 같은 실수를 범했다.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특정 배우에 대한 호불호나 장르적 호감, 소재 자체로 영화를 옹호하거나 거부했다이런 선입견이 낳은 결과는 소탐대실이었다. 이대로 묻히기 아까운 많은 영화들이 극장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사라져간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합작인 셈이다.
 
지난해 나는 한강의채식주의자를 읽으며 단어 하나, 문장 한 마디에서 함축적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심오한 세계를 숨긴 건 각각의 단어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며 얼어붙어 버렸다. 이렇게 흘러갈 것이란 확신에 찬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져버린 탓이다. 얼어붙어 버린 건채식주의자속 주인공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선입견의 틀 속에 아내를 가둔 채 진짜 모습을 보지 않으려 했다. 사실 속으로는 알고 있었는데도 인정하기 싫었을지 모른다.
 
새해가 밝았다. 모두는 새 마음으로 새로운 일 년을 기대하고 꿈꾼다. 한국영화계도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 희망을 좌지우지하는 건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가 자신의 선입견을 깨고 얼마나 많은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따라 올 한해 한국영화계, 나아가 대한민국의 모든 지형도가 바뀐다. 선입견, 2019년엔 그걸 깨봐야겠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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