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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국민연금 주주권 강화는 제로섬이 아니다
2019-01-17 00:00:00 2019-01-17 00:00:00
국민연금이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로 하면서 재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영권 침해로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고 심한 경우 국민연금이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연금사회주의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 도입을 검토할 때부터 계속된 주장으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에 110조원을 투자하고 있고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만 300개가 넘는다. 국민연금이 이런 지위를 악용한다면 국내 주식시장과 기업을 손에 쥐고 흔드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그럴 뜻이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공개된 원칙을 기반으로 실행된다. 기업을 마음대로 하고 싶다면 스튜어드십코드는 걸림돌이다. 원칙 없이 밀실에서 압력을 행사하는 게 훨씬 수월하다. 국민연금은 물론이고 그 뒤에 숨어 기업을 쥐락펴락하고 싶은 권력자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이 무차별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려는 것도 아니란 점에서 모든 기업의 경영권을 위축시킨다고 보기도 어렵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국민연금은 경영권에 손을 대려는 것도 아니다. 경영권을 쥔 일부의 부적절한 행위가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대상이다. 주주권 강화는 이런 잘못을 바로잡아 기업의 가치 훼손을 막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 증시가 역대급 폭락을 경험할 때 증시 전문가들은 기업지배구조의 후진성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기업의 가치를 주주와 공유하지 않고 총수 등 일부가 독점하는 게 당연시되는 문화, 언제 터질지 모를 총수 일가의 갑질과 같은 문제가 국내 기업과 증시를 만년 저평가에 시달리게 하고 대외 요인에도 부침이 크게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첫 대상이 된 한진칼과 대한항공은 이런 문제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배임·사기·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폭력을 행사하는 영상이 공개됐고 딸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일명 '물컵 갑질'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한진그룹을 지배하는 조 회장 일가의 부적절한 행위는 대한항공 주가 추락을 부추겼다. 대한항공의 주가 하락은 지분 12.45%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손실로 이어졌다.
 
총수 일가의 부적절한 행위는 일부의 문제일 수 있지만 주주와 이익을 공유하는 배당이 인색한 것은 국내 상장사 전반의 문제다. 올해 예상 순이익 기준 국내 주식시장의 배당수익률은 1.6%로 전 세계 평균 2.6%보다 1%포인트 낮다. 전체 60여개국 중 우리보다 배당수익률이 낮은 곳은 베트남, 필리핀, 인도 정도다.
 
누가 봐도 바로잡아야 할 일에 발목을 잡는 것은 억지다. 주주권 강화는 기업의 경영권을 위축시키고 총수 일가의 재산권을 빼앗는 대신 국민연금 등 다른 주체만 이득을 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기업과 주주, 주식시장 나아가 경제 전반에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이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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