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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Man Do!”
2019-01-30 00:00:00 2019-01-30 08:16:33
“넘어지지 않은 사람은 행운아다. 많은 사람은 넘어진다. 나도 넘어졌고 다시 일어섰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이 가는 말이다. 운곡(雲谷) 정인영 한라그룹 창업자가 생을 되돌아보며 남긴 소회다. 그의 일생은 한국 경제의 축소판으로 여겨진다. 일반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그것도 세 번이나 겪었지만 운곡은 다시 일어났다. 오뚝이 경영자라고 불리는 그의 말처럼 한국 기업가 정신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은 없을 것이다.
 
운곡은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손아래 동생으로, 형을 도와 현대그룹이 기반을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동 진출 건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자 1976년 현대양행을 갖고 독립했다.
 
첫 시련은 현대양행으로 한창 사세를 키우던 1980년 중화학공업의 난립을 재편하겠다는 신군부에 의해 창원공장과 군포공장을 ‘강탈’ 당한 것이었다. “꿈을 빼앗긴 사실이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창원공장은 한국중공업을 거쳐 현재는 두산중공업이 됐다.
 
절망했으나 좌절하지 않은 운곡은 현대양행을 빼앗긴 뒤 남은 안양기계제작소를 기반으로 18명의 동지들과 재기에 나서 한라그룹을 일으켰다. 안양기계제작소는 만도기계(현 만도)다. 만도기계를 중심으로 덩치를 키운 한라그룹은 1989년 매출액이 1조원에 육박했다. 이 무렵 운곡은 뇌졸중이라는 두 번째 시련을 겪는다. 좌반신이 마비됐고 언어장애까지 생겼다. 증세가 워낙 심했지만 그는 “병을 이기는 것도 사업”이라며 다시 일어섰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재계는 그런 운곡에게 ‘휠체어 부도웅’, ‘재계의 부도웅’이란 별칭을 지어줬다.
 
1997년 한라그룹은 재계 12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그해 발발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한라그룹이부도가 나는 세 번째 시련을 맞았다. 운곡은 1999년 모태기업인 만도기계를 매각하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 끝에 한라그룹을 되살렸다. 그룹을 살린 그는 2006년 7월 20일 별세했다. 아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2년여 후인 2008년 3월 만도기계를 되찾았다.
 
운곡은 “역경이란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에 불과하다. 뜻을 세우면 길은 열린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Man Do!”라고 했다. ‘만도(萬都)’는 운곡이 재기 의지를 담아 직접 지은 단어로, ‘인간은 할 수 있다(man do)’는 뜻과 ‘1만 가지 도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운곡이 한라그룹을 키워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기반은 ‘기술’이다. 그는 기술에 대해서는 무모할 정도의 집착을 보였다. 한라그룹과 만도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기술확보 뿐이라며, 임직원들과 함께 늘 “기술지상(技術至上), 기술로 승부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기술지상은 한라그룹의 경영철학으로 계승되어 오고 있다.
 
지금 중공업이 멸시를 당하고 있지만 운곡이 살아 있었다면 여전히 “중공업 개발 없이 경제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며 당장은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불황의 골이 깊은 2019년, 기업인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채명석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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