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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화승 사태' 계기로 어음제도 개선해야
2019-02-11 15:11:32 2019-02-11 15:11:32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 유통업체 화승의 법정관리 여파가 작지 않다. 단지 산업은행이 구성한 사모펀드가 대주주인 기업이 무너져서가 아니다. 화승에 납품을 한 50여곳의 물품업체와 원자재업체 등이 직접적인 피해를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추정되는 피해 납품대금만 해도 1000억원에 달한다. 납품업체에 또 다시 원자재를 제공하는 2·3차 협력 업체의 도미노 부실까지 점쳐져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어음제도에 있다. 납품대금 지급을 5~6개월짜리 어음으로 결제하면서 부실 위험에 대한 리스크가 높아졌다. 청와대 게시판에선 많은 하청업체들이 화승의 법정관리 사태가 남일 같지 않다고 토로한다. 하청업체가 일정 기간 이후 결제 대금을 받기 위해선 연이어 납품 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탓하면서다. 이런 구조에선 납품 거래가 누적돼 부실 피해도 커진다. 특히 화승의 브랜드 매장에서 일하는 백화점 중간관리자의 임금까지 어음으로 지급되면서 어음제도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어음부도 사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어음부도 업체는 469개나 됐. 최근에 패션업계에선 오렌지팩토리를 운영한 우진패션비즈가 세 차례 기업어음 상환에 실패하면서 청산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어음제도를 악용한 부실 사태가 업계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어음제도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78월 정부는 관계 부처 합동 태스크포스를 꾸린 뒤 세부방안을 발표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당장 어음제도를 일시에 폐지할 수 없는 기업들의 어려움도 무시할 순 없다. 그러나 납품구조에 대한 전향적인 개선이 미뤄지면 제2의 화승 사태는 또다시 벌어진다.
 
원청업체의 책임을 높이는 방식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애초에 원청이 하청업체에 지급해야할 납품대금을 금융회사에서 빌려 지급하고, 향후 금융회사에 원청이 갚는 방식으로 원청의 부담을 지워야 한다. 아니면 기업과 농어업협력재단의 예치계좌에서 정해진 기일에 대금을 지급하는 '상생결제'를 확산 시켜 부실 위험 전가를 선제적으로 막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번 설에도 대기업들은 협력업체 지원 방안의 하나로 납품대금 조기 지급 정책을 꺼냈다. 그러나 정해진 기간 안에 납품대금을 지급하는 것은 선심성 지원이 아니라 당연한 의무이다. 정해진 기일에 납품대금을 지급하는 게 당연한 사회가 되기 위해선 어음제도의 폐지가 신속히 시행돼야 한다.
 
김응태 기자 eung102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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