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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교토에서 정지용과 윤동주의 시를 만나고 돌아와서
2019-12-12 06:00:00 2019-12-12 06:00:00
늦가을이었다. 지난 11월 중순의 어느 날, 내가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교정을 찾았을 때는 단풍과 은행잎이 자신들의 마지막 색깔을 물들이기 위해 만추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햇살은 이윽고 불과 4, 5미터를 사이에 두고 교정에 나란히 세워진 정지용 시비와 윤동주 시비의 주옥같은 작품을 파고들며 시어 하나하나를 읽고 있는 듯했다. 시를 다시 소리 내어 읽고 싶어진다.  
 
鴨川 十里ㅅ벌에/ 해는 저믈어…… 저믈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언치도 않어라./ 역구풀 욱어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쌍 떠ㅅ다,/ 비마지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내의 시름./ 鴨川 十里ㅅ벌에/ 해가 저믈어…… 저믈어……
-정지용(1902-1950)의 「압천(鴨川)」 전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1917-1945)의 「서시」 전문   
 
앞의 시는 정지용 시비에 새겨진 「압천」 전문이고, 뒤의 시는 윤동주 시비에 새겨진 「서시」전문이다. 윤동주 시비는 시인이 영면에 들어간 해로부터 50주기가 되던 1995년에, 정지용 시비는 2005년에, 각각 세워졌다. 
 
압천의 ‘압(鴨)’은 ‘오리’를 나타내는 한자어고, ‘천(川)’은 ‘내’를 뜻하는 글자니, ‘오리가 노니는 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 잠시 압천에 펼쳐지는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일본어 발음은 ‘카모가와(かもがわ)’다. 카모는 ‘오리’, 카와는 ‘내’다. 하지만 그날 내가 본 카모가와에는 오리는 보이지 않았고, 작품에서처럼 십리나 되는(실제로는 약23킬로미터) 물줄기만이 교토 시내를 관통하고 있었다. 내는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다. 정지용이 이곳 교토에 유학했던 시기는 1923년에서 1929년.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정지용은 일제강점의 슬픈 역사를 가슴속에 품은 채, 적지 않은 시간 이곳에 머물렀다. 그렇게 바라본 압천이 젊은 정지용에게는 낯선 타국의 작은 강이었겠지만, 전체적인 시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작품 「압천」에는 그만의 애상감 같은 것이 배어 있다. “목이 자졌다”,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언치도 않어라.”, “역구풀 욱어진 보금자리”,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내의 시름.”은 화자의 그러한 심정과 호응하고 있는 표현들이다. 그때 정지용이 바라본, 해가 저물어가는 압천을, 나는 100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보고 그 당시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지만, 일정상 서둘러 길을 떠났다. 석양 무렵의 압천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윤동주의 서시는 우리나라 사람 누구에게나 친숙한 시다. 정지용이 서문을 썼다고 알려진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의 서두에 붙여진 작품이다. 역시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젊은 지식인 윤동주가 암울한 현실과 괴로움을 견뎌내며 순수한 삶을 살고자 다짐하는 의지가 읽힌다. 
 
최근에는 이러한 시인의 맑은 영혼을 기리는 일본인들도 많아져서, 2년 전인 2017년 10월, 역시 교토 우지시(宇治市) 시쓰카와(志津川)의 우지강(宇治川) 강변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비 제막식이 있었다. 시비에는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라고 노래했던 「새로운 길」이라는 작품의 전문이 새겨졌다.  
 
정지용, 윤동주, 두 시인의 시비가 교토의 대학에 세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윤동주 시인의 시비는 일반인들이 찾는 곳에도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민간인들 사이에는 평화를 희망하고 갈구하며, 문화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정신이 두 나라 국민 사이에도 강처럼 오랫동안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 글을 쓰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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