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이명신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하자마자 국내 주요 기업과 연이어 회동하며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수장의 방문에 국민적 관심이 쏠린 가운데 게임업계부터 국내 대표 기업 총수들까지 잇달아 만나고,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경기에서 직접 시구에 나서는 등 시민들과의 접점도 넓히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이 직접 움직이는 피지컬AI 단계로 넘어가면서 제조 인프라와 산업 현장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졌고, 제조업 강국인 한국이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한 것입니다. 단순 메모리 공급을 넘어, 피지컬AI와 로보틱스 등 미래산업 전반으로 협력 범위가 확대되는 양상입니다.
지난 5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고깃집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은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황 CEO,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부터). (사진=연합뉴스)
PC방만 세 번…엔비디아의 피지컬AI 관심
황 CEO는 게임업계와의 접점을 대폭 늘리고 있습니다. 황 CEO는 7일 서울 신논현역 인근 PC방에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을, 서초구 포털 PC방에서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각각 만났습니다. 지난 5일 입국 직후 서울 홍대의 e스포츠 구단 T1 베이스캠프를 방문한 데 이어 또다시 PC방을 찾은 것입니다.
이는 게임이 엔비디아 GPU 사업의 근간인 데다, 피지컬AI 시대에 게임 산업의 잠재력이 높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AI 연구개발 조직을 분사하고 생성형 AI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지난달에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발주한 국방용 로봇 체계 개발 과제에서 현대로템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는 등 AI와 피지컬AI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크래프톤 역시 올해 초 미국에 ‘루도 로보틱스’를 설립하며 로보틱스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방한 배경에는 피지컬AI와 로보틱스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황 CEO는 한국 도착 직후 김포공항에서 “한국은 AI 전문성과 로보틱스 전문성이 뛰어나고 세계적인 제조업 중심지”이라며 “반도체 생산 역시 점점 더 로봇화되고 AI 기반으로 바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이미 한국 R&D 센터 인력을 채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채용할 예정”이라며 국내 인재에 대한 관심도 드러냈습니다.
“로봇 사업 관심”…국내 총수 연쇄 회동
본업인 AI에 대한 엔비디아의 장악 의지 또한 여전합니다. 황 CEO는 지난 5일 ‘삼겹살 회동’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을 만나 소맥(소주+맥주)과 삼겹살을 곁들인 만찬을 가졌습니다. 지난해 ‘깐부 회동’ 참석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는 7일 서울 종로구 우래옥에서 냉면 회동을 했고,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는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홈경기에서 각각 시구자(황 CEO)와 시타자(박 회장)로 나서 합을 맞췄습니다.
7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왼쪽부터)이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명신 기자)
이들 기업은 AI와 피지컬AI로의 체질 전환 과정에서 엔비디아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LG그룹은 LG전자(로봇)·LG이노텍(부품)·LG AI연구원(AI) 등을 중심으로 AI와 피지컬AI 분야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자체 초거대 AI 모델과 클라우드 인프라를 보유한 국내 대표 IT 기업으로, 데이터센터와 AI 팩토리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현대차그룹 역시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분야에서 엔비디아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양사는 30억달러를 투자해 국내에 엔비디아 AI 기술센터와 현대차그룹 피지컬AI 애플리케이션 센터를 설립하기로 한 바 있습니다. 두산그룹도 건설기계와 발전설비, 로봇 사업에 AI를 접목하기 위해 엔비디아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SK그룹은 SK하이닉스가 AI 가속기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만큼,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 분류된 모습입니다. 최 회장은 지난 1일(현지시각) 대만 타이베이, 5일 ‘삼겹살 회동’에 이어, 7일 저녁 황 CEO와 ‘깐부 회동’을 가질 예정입니다.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회장과 만났던 서울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열리는 두 번째 회동으로, SK 측에서는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 경영진도 참석합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회동에서 메모리 공급망과 디지털 트윈 등 AI 인프라 관련 협력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5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고깃집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사진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황 CEO, 이해진 네이버 의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부터). (사진=연합뉴스)
스타트업·대학까지…소통 늘리는 엔비디아
8일 오후 또는 9일 오전 출국이 예상되는 황 CEO는, 출국 직전까지 광폭 행보를 이어갈 전망입니다. 특히 주요 기업들과의 사업 협력 방안 논의가 이날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황 CEO는 서울 여의도 LG전자 본사 방문을 시작으로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경기도 성남 네이버 1784 사옥 등을 차례로 방문할 예정입니다. 구 회장 역시 지난 5일 삼겹살 회동 직후 “너무 즐겁게 즐기고 있다. 오늘은 편안하게 친목을 다지는 자리고, 다음주 월요일에 미팅이 있다”고 예고한 바 있습니다.
나아가 학계와 스타트업 등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황 CEO는 8일 국내 로봇·AI 스타트업과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하는 한편 서울대 AI연구원 방문 일정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만나 GPU 공급 등 국가 차원의 AI 협력 방안도 논의할 계획입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에도 엔비디아와의 협력이 중요하고, 엔비디아 역시 제조 경험과 산업 데이터를 보유한 한국 기업이 필요한 만큼 이번 방한을 계기로 협력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로봇업계 관계자는 “AI가 있는 로봇과 없는 로봇의 성능은 천지 차이인데, AI의 핵심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하는 것”이라며 “엔비디아 AI 소프트웨어를 많이 활용하고, 그게 한국 로봇 기업의 AI 진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안정훈·이명신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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